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제13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3장 · 21 / 34
바람을 견디는 형식
자라난 자세와 지은 자세
논증 VI · 풍토는 자세를 조직한다
1984년의 〈폭풍〉에서 소나무 두 그루는 줄기째 휘었고, 그 아래에는 돌담을 두른 초가가 있다. 한 화면 안에 기운 나무와 낮은 집이 함께 있다. 둘은 모두 바람을 피해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 이 장은 두 사례를 한 장에 놓고, 바람이 자리를 옮길 수 없는 것들에 어떤 자세를 남기는지 묻는다.
사례 A기운 나무 — 나무의 자세와 지속의 형식
1휜 소나무
1984년의 〈폭풍〉에서는 소나무 두 그루가 줄기째 오른쪽으로 휘었다. 가지도 같은 쪽으로 쏠렸다. 그 아래에 돌담을 두른 초가가 있고, 사람 하나가 말의 머리를 붙든 채 몸을 앞으로 굽혔다. 흰 파도 같은 붓질이 화면 가운데를 가로지른다.1
제주 시기의 여러 작품에는 곧게 서기보다 한쪽으로 기운 나무가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소나무가 있고, 잎을 떨군 나무도 있다.
나무는 바람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 이 사례는 논증 VI의 두 번째 동사 '기운다'를 따라간다.
2떠날 수 없는 몸
사람은 바람을 피해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말도 자리를 옮긴다. 나무는 뿌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같은 자리에 선 나무의 몸에는 그 나무가 자라 온 조건이 새겨진다. 나무가 기우는 까닭은 여러 가지다. 빛과 땅의 모양, 흙과 자랄 자리도 나무를 기울게 한다. 바람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쪽에서 오는 바람을 오래 맞은 나무에서는 그 바람의 방향이 가지와 수관의 모양에 남기도 한다. 제주의 바닷가에도 북서풍에 한쪽으로 기운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2
기운 나무는 한 번 지나간 바람보다 오래 맞아 온 바람을 가리킨다. 그림 속 나무가 실제 어느 나무를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나무와 나란히 놓고 변시지의 기운 나무를 읽을 수는 있다.
3기울기와 잎
그림 속 나무의 자세는 기울기와 잎으로 읽을 수 있다.
줄기는 곧게 서기보다 한쪽으로 기운다. 〈폭풍〉의 나무는 줄기째 휘었고, 〈하늘로 가려는 나무〉(2007)의 줄기는 한 번 굽었다가 다시 위로 오른다.3 여러 나무가 비슷한 쪽으로 기울 때 화면에는 같은 힘이 지나간 듯한 방향이 생긴다. 자세의 기울기, 높이, 방향 가운데 나무는 기울기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낙엽수는 잎이 지면 가지와 줄기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잎을 떨군 나무는 먼저 실제 계절의 모습이다. 이 사례는 그것을 곧바로 쓸쓸함이나 쇠약의 상징으로 읽지 않는다.
잎이 사라지면 나무는 선에 가까워진다. 화면에서 줄기와 가지는 검은 선처럼 보이기 쉽다. 제10장에서 본 검은 선이 나무의 몸이 되는 자리다.
4늦게 시드는 소나무, 기운 소나무
동아시아 전통에서 소나무는 오래 견딤의 표상으로 읽혀 왔다.4 그러나 변시지의 제주 시기 소나무에서 견딤은 변하지 않는 푸름보다 기울어진 자세로 드러난다.
〈열대의 태양〉과 〈폭풍〉의 소나무는 푸름이 아니라 어두운 형상으로 서고, 오래 맞은 바람의 방향을 몸에 남긴다.
두 가지가 서로 맞서는 것은 아니다. 견딤을 보여 주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견딘다는 것이 언제나 그대로 있다는 뜻인지는 굽은 몸을 다루는 제16장에서 다시 묻는다.
5나무에 남은 풍토
나무는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오래 한자리에 선 나무의 몸에는 그곳의 풍토가 기울기라는 자세로 남는다. 이 기울기를 아직 패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기운 나무는 쓰러진 나무와 다르다. 뿌리는 땅에 있고, 줄기는 기운 채로 서 있다. 그 뜻은 다른 몸들을 더 본 뒤에 묻는다.
〈폭풍〉의 두 소나무는 오른쪽으로 휘어, 바람이 지나간 방향을 화면에 남긴다. 이 사례는 나무가 자라면서 기울고, 그 기울기로 풍토를 몸에 새긴다는 것을 보았다.
기운 나무의 자세는 자라면서 얻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라지 않는 것, 사람이 지은 것은 바람 속에서 어떤 자세를 얻는가. 사례 B는 제주의 낮은 집에서 이 물음을 묻는다.
사례 B낮은 집 — 건축·거주·바람의 기술
1새 세 마리 아래의 집
〈그리움〉(1996)에는 집이 있고, 그 위로 새 세 마리가 있다.5 집은 화면 아래쪽에 있다. 너비는 화면의 절반쯤이고, 높이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붕 위로 나무 두 그루가 서고, 그 위로 하늘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집 앞에는 말 한 마리가 서 있고, 문간에는 사람 하나가 웅크리고 앉았다. 제주 시기의 여러 그림에서 집은 크지 않다. 초가는 땅에 붙은 듯 낮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례 A의 나무는 뿌리를 옮기지 못한 채 자라며 기운다. 집은 다르다. 집은 사람이 짓는다. 사람은 바람 속에서 집에 어떤 자세를 주었을까.
2바람 속에 지은 집
화가는 구술에서 제주의 집을 바람과 이어 설명했다. 사람들이 "바람에 어떤 저항력을 가질려고" 초가를 꽉 묶어 놓고, 돌담은 틈으로 바람이 빠져나가게 쌓았다는 것이다.6 『예술과 풍토』에서는 제주의 초가를 "심한 바람을 이겨 온 두꺼운 새와지붕"이라 적었다(새는 지붕을 이는 풀이다).7
민속 조사 자료의 설명도 이와 맞닿는다. 제주의 옛 초가는 다른 지역보다 지붕의 물매, 곧 기울기가 완만했다. 지붕은 줄로 단단히 얽어맸고, 둘레에는 높은 돌담을 쌓았다. 그물처럼 엮은 지붕의 줄은 겨울의 센 바람에 대비한 것으로 설명된다. 굽은 올레(집으로 드는 좁은 길)나 정낭(대문 자리에 걸치는 긴 나무) 같은 요소도 바람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이런 특징은 겨울 북서풍을 강하게 받는 한라산 북쪽 마을의 집에서 더 뚜렷하다고 한다.8
다만 바람만이 이유는 아니다. 비가 많은 기후도 집의 모양에 관계했다고 한다. 건축 재료와 생활 방식도 함께 작용할 수 있다.
3화면 속의 낮음
그림 속 집도 낮다. 나무가 기울기를 보여 준다면, 집은 높이를 보여 준다.
낮은 집은 화면에서 세 가지 일을 한다.
집은 땅과 가깝다. 지붕의 선이 땅의 선과 붙어 보이는 경우가 많아, 땅의 일부처럼 보인다.
집은 작다. 넓은 빈 곳 앞에서 작아지고, 먼 배 한 척처럼 그 작음이 둘레의 넓이를 드러낸다.
집은 위를 남긴다. 〈그리움〉에서도 집 위의 자리에는 새 세 마리가 있다. 집이 낮으면 그 위의 하늘이 넓게 남는다.
4자라난 자세, 지은 자세
나무의 기울기와 집의 낮음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나무는 자라면서 바람과 빛에 맞춰 기운다. 집은 사람이 바람을 헤아려 짓는다. 하나는 자라난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지은 자세다.
지은 자세에는 사람의 앎과 기술이 들어 있다. 화가는 이런 집을 두고 저항을 말했고, 바람을 이겨 왔다고 썼다. 그 저항은 높이 서서 받아치는 모양이 아니었다. 묶고, 쌓고, 낮게 앉는 모양이었다.
화가가 말한 돌담의 틈도 그렇다. 그의 말대로라면 돌담은 바람을 다 막지 않고, 틈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막는 일과 흘려보내는 일이 한 담 안에 있다.
5집에 남은 풍토
풍토는 자연물에만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풍토를 헤아려 삶의 형태를 만든다. 변시지의 화면에서 그 형태는 낮은 집으로 되풀이된다.
〈그리움〉이라는 제목은 이론적 중간결론에서 본, 서로 다른 삶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감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목을 함께 놓으면, 이 낮은 집은 바람을 견디는 집인 동시에 누군가 그리워하는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사례는 집의 낮음이 사람이 바람을 헤아려 지은 자세이며, 화면에서는 땅에 붙고 위의 하늘을 남기는 형식이 된다는 것을 보았다.
나무는 자라면서 기울었고, 집은 지어지면서 낮아졌다. 두 사례는 바람이 자리를 옮길 수 없는 것들을 쓰러뜨리기보다 기울게 하고 낮추며, 그 자세가 화면에서 기울기와 높이라는 형식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제12장의 낮아진 몸과 함께, 이것이 논증 VI의 잠정 결론이다. 풍토는 자세를 조직한다. 논증 VII은 그 자세가 일과 짐승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묻고, 제14장은 낮은 집에서 나와 바다와 밭에서 일하는 몸으로 간다.
집은 높이 서지 않았다. 땅에 붙어 오래 앉았다.
주와 출처
- ↑ 〈폭풍〉(1984).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22)으로 확인.
-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바람」. 해안의 북서풍과 한쪽으로 기운 나무에 관한 설명.
- ↑ 〈하늘로 가려는 나무〉(2007)는 byunshiji.org 작품 100의 FŪDO 013. 화면은 그 도판으로 확인.
- ↑ 『논어』 「자한(子罕)」.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 ↑ 〈그리움〉(1996).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87)으로 확인.
-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5차 구술(2005년 1월 18일), 221쪽. 사람들이 "바람에 어떤 저항력을 가질려고 초가집 같은 것도 꽉 묶어놓고", 돌담도 "바람에 구멍이 나가게끔" 만든다고 했다. 이 말은 바람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제주 사람들의 집념으로 이어진다.
-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제주에 산다」 가운데 '원시(原始)에의 향수'.
- ↑ 제주 옛 초가의 구조와 바람: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바람」,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제주도의 초가」,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 아카이브(초가지붕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