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I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논증 VII · 22 / 34
노동과 동물은 신체의 관계와 선택을 드러낸다
해녀·농사꾼·호랑이·말
변시지의 몸은 고립된 사람의 몸이 아니다. 해녀의 숨, 쟁기를 잡은 몸의 기울기, 사람과 함께 일해 온 말, 주어진 상징을 지나 마른 몸을 얻은 호랑이는 신체가 일·짐승·도구·지형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노동하는 몸을 고통의 상징으로 먼저 읽지 않고, 되풀이된 활동이 남긴 자세로 분석한다.
논증의 얼개
- 주장
- 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일·짐승·도구·지형과의 되풀이된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그 관계는 화가가 고른 몸의 형식으로 화면에 남는다.
- 작품 증거
- 〈해녀〉(1979), 〈바다는 해녀의 눈물〉(1989), 〈밭갈이〉(1979), 〈호랑이〉(1985), 〈시선〉(2001). 〈호랑이〉는 제주에 없는 짐승이자 부탁받은 소재인데도 같은 마른 몸을 얻었다는 점에서, 몸의 형식이 소재보다 화가의 선택에서 왔음을 보여 준다.
- 1차 자료
- "뚱뚱한 해녀를 그리지 않는다", "나는 달리는 말을 그리지 않는다"는 말(저자가 직접 들은 가족 구술), 말을 노동의 동반자로 말한 네비스의 기록, 제주마·해녀·농사에 관한 작가의 기록과 구술.
- 반례
- 〈희망·의욕·평화 그리고 사랑〉(1994)에는 두 팔을 들어 올린 사람과 서로 기대어 앉은 두 사람이 있다. 일에서 오지 않은 몸짓이다. 〈시선〉(2001)의 말도 일하지 않고 홀로 서 있다. 몸이 노동과의 관계로 형성된다는 명제는 이런 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 자료 한계
- 가족 구술은 최초 기록 시점과 정확한 문맥을 밝혀야 하며, 제주 해녀·말의 생활사를 화가의 선택과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기존 미술사와의 차이
- 노동을 계급 표상이나 사회적 리얼리즘으로만 읽지 않고, 장소·일·짐승·도구가 함께 만드는 과업의 관계망으로 읽는다.
- 잠정 결론
- 풍토적 몸은 '제주 사람의 전형'이 아니라 되풀이된 일과 관계가 만든, 화가가 고른 몸의 형식이다. 이 논증의 범위는 일과 동반의 장면으로 한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