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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I/제15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5장 · 24 / 34

동물의 몸

마른 몸과 멈춘 몸

논증 VII · 노동과 동물은 신체의 관계와 선택을 드러낸다

변시지의 화면에는 사람 곁에 자주 짐승이 있다. 1985년의 호랑이는 학교의 부탁으로 그린 짐승이고, 말은 스무 해 넘게 그의 그림에 줄곧 있었다. 이 장은 섬에 없던 짐승과 사람과 함께 살아온 짐승을 한 장에 놓는다. 그리고 짐승의 몸이 그의 형식 안에서 어떤 자세를 얻는지 묻는다.

사례 A마른 호랑이 — 주어진 소재를 통과하는 형식

변시지, 〈호랑이〉, 1985
변시지, 〈호랑이〉, 1985. 저자 제공 도판 작품 100에 없는 그림이다.

1마른 호랑이

〈호랑이〉(1985)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몸이 말랐다. 입은 웃는 듯하다.

호랑이는 오래 힘의 짐승으로 그려져 왔다. 그런데 이 호랑이에게는 두툼한 몸이 없다. 이 마른 몸은 어디에서 왔는가.

2섬에 없던 짐승, 학교의 상징

제주는 호랑이가 없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 호랑이가 없는 까닭을 전하는 옛이야기가 있고,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처럼 이름 속에도 남았다. 호랑이는 그렇게 이야기와 이름으로만 이 섬에 있다.1

고려대학교는 변시지에게 호랑이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2 고려대학교의 상징은 호랑이다. 학교는 이 동물에 용기와 결단, 민첩함과 위엄을 담는다. 학교를 상징하는 호랑이는 크게 울부짖는, 포효하는 모습이다.3

호랑이라는 소재는 제주의 풍토에서 오지 않았다. 학교의 부탁에서 왔다.

제14장에서 본 해녀의 몸에는 바다의 일이 실려 왔다. 이 호랑이의 몸에 실린 것은 바다의 일이 아니다. 상징 속의 호랑이도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호랑이는 말랐다. 섬에 없던 짐승까지 왜 그가 그리는 마른 몸을 얻었는가.

주제는 주어졌다. 몸은 화가가 그렸다.

3살과 뼈, 그리고 입

살이 빠진 자리에 갈비뼈가 드러난다. 변시지의 화면에서 몸은 대개 검은 선으로 선다. 갈비뼈가 선으로 그어졌다면, 이 그림에서 선은 윤곽을 넘어 몸의 뼈대까지 내려간 셈이다.

상징 속의 호랑이는 포효한다. 이 호랑이의 입은 웃는 듯하다. 마른 몸과 웃는 듯한 입이 한 몸에 있다.

살은 줄었다. 호랑이는 줄지 않았다.

4그려진 호랑이들

한국 회화에는 호랑이 그림이 많다.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1745~?)의 것으로 전하는 〈송하맹호도〉는 소나무 아래의 사나운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다. 그 호랑이는 털 한 올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힘과 위엄을 보인다.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조선 후기 민화의 까치호랑이는 결이 다르다. 그 호랑이는 무섭기보다 익살스럽게 그려지는 일이 많다.

변시지가 그린 호랑이의 웃는 듯한 입은 민화의 호랑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갈비뼈가 드러난 몸은 민화에서 흔히 보는 몸이 아니다.

위엄의 호랑이, 익살의 호랑이, 마른 호랑이. 한 짐승이 이렇게 여러 몸을 얻었다.

5마른 몸이 남기는 것

앞의 몸들은 저마다 풍토 속에서 자세를 얻었다. 호랑이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 학교가 부탁한 위엄의 짐승을 그는 마른 몸으로 그렸다. 그렇다면 마른 몸은 그려진 짐승이 말라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몸을 그리는 방식에서 왔다. 그 방식은 제주에서 익은 것이다. 섬에 없던 짐승도 그의 손을 지나며 같은 몸을 얻었다. 형식은 소재를 가리지 않았다.

이 사례는 이 마른 몸을 가난이나 시대의 고통으로만 읽지 않는다. 웃는 듯한 입이 그 읽기를 막아선다. 그렇다고 웃음 때문에 아픔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마른 몸을 보는 불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호랑이에서 선은 갈비뼈까지 내려갔다. 이 사례는 마른 몸이 소재가 아니라 제주에서 익은 형식에서 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호랑이의 힘은 몸집에 있지 않다.

호랑이의 마른 몸은 주어진 소재가 그의 손을 지나며 얻은 몸이었다. 제주의 말은 사정이 다르다. 이 섬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고 살아온 짐승이다. 사례 B는 달릴 수 있는 이 몸이 화면에서 왜 달리지 않는지를 묻는다.

사례 B달리지 않는 말 — 멈춤과 동반의 자세

변시지, 〈시선〉, 2001
도판 24. 변시지, 〈시선〉, 2001. 작품 100 · FŪDO 090 작품 보기 →

1달리지 않는 말

말 한 마리가 서 있다. 〈열대의 태양〉(1983)에서는 검은 소나무 옆에, 〈흔들리는 수평선〉(2005)에서는 절벽 위 노인 옆에 있다. 〈시선〉(2001)에서는 말이 혼자 물가의 언덕에 서서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보는 듯하다. 수평선에는 배 한 척이 있다. 그림들 사이에는 스무 해 넘는 시간이 있다. 그동안 말은 그의 그림에 줄곧 있었다.

말은 달리는 짐승이다. 그림 속의 말도 달리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져 왔다. 그런데 그의 말은 달리지 않는다. 〈열대의 태양〉의 말도, 〈흔들리는 수평선〉의 말도, 〈시선〉의 말도 네 발을 땅에 두고 서 있다.4 화가 자신의 말도 있다. "나는 달리는 말을 그리지 않는다."5 달릴 수 있는 몸이 달리지 않을 때, 그 몸은 화면에서 무엇이 되는가.

2사람과 함께 살아온 말

제주의 말은 몸집이 작다. 1276년 몽골말 160마리가 섬에 들어온 뒤로 오래 이곳에서 길러졌고, 거친 먹이와 궂은 날씨에 잘 적응했다. 사람들은 이 말로 밭을 갈고, 짐을 나르고, 길을 다녔다. 제주마는 1986년 천연기념물이 되었다.6

말은 화가의 어린 날에도 있었다. 변시지는 『예술과 풍토』에 어린 날의 일을 적었다. 아버지와 함께 외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는 길에, 안장도 없는 조랑말을 탔다가 엉덩이 살이 벗겨졌다는 것이다. 굵은 줄로 얽은 초가와 무너질 듯한 돌담, 돌담 위의 까마귀, 이런 것들과 함께 조랑말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된 듯하다고도 썼다.7

화가는 말에 마음을 둔 까닭도 밝혔다. 네비스의 글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말이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말에 애착이 있다고 했다. 말은 밭 가는 일을 돕고, 사람을 태우고, 충실한 동반자가 된다. 네비스의 글은 이어서, 말이 주변의 변화에 몹시 민감해 다가오는 폭풍을 사람에게 알린다고 적는다.8

그러니 이 말의 몸은 앞 사례의 호랑이와도, 제14장의 일하는 몸과도 또 다르다. 제주의 말은 동물이면서, 사람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온 몸이다.

그의 말이 늘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밭갈이〉(1979)의 말은 쟁기를 끌며 걷는다. 그러나 달리지는 않는다. 이 사례는 그 가운데 제자리에 선 말을 보고, 그 모습을 '멈춤'이라 부른다. 멈춤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와 다르다. 달릴 수 있는 몸만이 멈출 수 있다.

3멈춘 몸이 하는 일

달리는 말을 그리면 화면에 속도가 생긴다. 다리는 앞뒤로 벌어지고, 몸은 한 방향으로 길게 뻗으며, 눈은 말이 향하는 쪽으로 끌려간다. 달리지 않는 말은 그런 방향을 만들지 않는다. 제자리에 있다.

멈춘 말은 짝을 이룬다. 앞의 두 그림에서 말은 한 마리지만 혼자는 아니다. 한 그림에서는 소나무가, 다른 그림에서는 노인이 옆에 있다. 말은 가까운 자리에 놓이고, 먼 배와 함께 화면의 앞과 뒤를 나눈다. 〈시선〉의 말은 혼자다. 그래도 그 말이 고개를 돌려 보는 쪽에는 먼 배가 있다.

배가 한 척이듯 말도 하나로 놓인다. 무리 지어 달리는 말이 아니다. 한 마리라서 둘레의 빈 곳이 크게 보인다.

바람도 말의 몸에 드러난다. 네비스는 변시지의 제주 그림에서 바람이 보이는 자리를 꼽았다. 휜 나뭇가지와 연약한 집, 까마귀의 비행, 그리고 말의 기울어진 고개와 갈기의 움직임이다.8 달리지 않는 말은 바람을 가르고 나아가지 않는다. 고개와 갈기로 바람을 받는다. 〈흔들리는 수평선〉(2005)의 말은 절벽 위에서 고개를 조금 숙였고, 갈기는 뒤로 날린다. 〈바람 속에서〉(1984)의 말도 갈기가 한쪽으로 쏠렸다.

말과 사람이 늘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거리에 화가가 다른 뜻을 둔 때도 있다. 2005년 1월의 구술에서 변시지는 그림을 펴 보이다가, 어떤 화면에는 남북이 나뉘어 갈 수 없는 뜻도 있다고 말했다. 구술을 받아 적은 채록자가 그림 속 말과 사람의 자리를 하나씩 짚자, 화가는 "갈 수 없는"이라고 이었다.9 말과 사람이 떨어져 있는 자리에 그런 뜻을 두었다는 말로 읽힌다. 가까이 있음과 갈 수 없음. 말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뜻을 품는다.

4달리는 말의 그림

19세기 회화와 연속사진은 달리는 말의 속도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다.10 변시지는 이 문제를 택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속도보다 멈춤을 보여 준다. 달릴 수 있는 몸을 멈춰 세움으로써, 운동의 방향보다 몸이 선 자리와 주변 관계를 강조한다.

5달릴 수 있는 몸의 멈춤

말의 자세는 멈춤이다.

멈춤은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말은 달릴 수 있는 몸이다. 그 몸이 달리지 않을 때, 사람 옆에 한 자리가 생긴다. 사람이 바람 속에 서 있으면 말도 같은 바람을 맞는다. 네비스의 글에서 말은 폭풍을 먼저 알아채는 짐승이었다. 그림은 그 짐승을 그 자리에 세워 두었다.

멈춘 말은 자리를 지킨다. 그것이 이 몸이 하는 일이다.

이 사례에서 본 세 그림의 말은 네 다리를 모두 땅에 두고 사람 옆에 멈춰 섰다. 이 사례는 그 멈춤을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달릴 수 있는 몸이 자리를 지키는 자세로 읽었다.

호랑이는 주어진 소재가 그의 손을 지나며 마른 몸을 얻었고, 말은 사람 곁에 멈춰 섰다. 제14장의 일하는 몸과 함께 놓으면, 그의 화면에서 몸은 혼자 서지 않고 일과 짐승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꼴을 얻는다. 이것이 논증 VII의 잠정 결론이다. 그런데 이 섬에는 짐승보다 센 힘, 폭풍이 있다. 제16장은 논증 VIII을 열며 폭풍 앞의 몸이 무엇을 견디는지를 본다.

멈춘 것은 달릴 수 있는 몸이었다.

주와 출처

  1. ↑ 범섬은 서귀포 앞바다의 섬으로, 이름의 '범'은 호랑이를 뜻한다. 제주에 호랑이가 없는 까닭을 전하는 옛이야기의 출처:
  2. ↑ 〈호랑이〉(1985)는 고려대학교의 부탁으로 그린 그림이다(저자 확인).
  3. ↑ 고려대학교 누리집 「심벌」
  4. ↑ 〈시선〉(2001)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FŪDO 090, 〈밭갈이〉(1979)는 FŪDO 042, 〈바람 속에서〉(1984)는 FŪDO 015, 〈흔들리는 수평선〉(2005)은 FŪDO 007, 〈열대의 태양〉(1983)은 FŪDO 008. 말의 자세는 그 도판으로 확인.
  5. ↑ 화가가 생전에 한 말이다. 저자(아들)가 직접 들었다(저자 확인, 2026-09-29). 글로 남은 출처는 찾지 못했다. 제12장 5절에서 한 번 간접으로 옮겼다.
  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주의 제주마」(김대철 집필); 제이누리, 「작지만 강한 제주마 출생의 비밀은」.
  7.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제주에 산다」 가운데 '원시(原始)에의 향수'와 '제주의 향토 예술'. 같은 일은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1차 구술(24~25쪽)에도 나온다.
  8.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9.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제5차 구술(2005년 1월 18일, 기당미술관), 219~220쪽. 대화 중 펴 보인 그림의 제목은 채록문에 나오지 않는다.
  10. ↑ 테오도르 제리코, 〈엡섬의 경마〉(1821), 루브르 박물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연속 사진은 1878년에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