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I/제14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4장 · 23 / 34

노동하는 몸

해녀·농사꾼·마부의 태스크스케이프

논증 VII · 노동과 동물은 신체의 관계와 선택을 드러낸다

변시지, 〈해녀〉, 1979
도판 22. 변시지, 〈해녀〉, 1979. 작품 100 · FŪDO 040 작품 보기 →
변시지, 〈밭갈이〉, 1979
도판 23. 변시지, 〈밭갈이〉, 1979. 작품 100 · FŪDO 042 작품 보기 →

1선택된 몸

〈해녀〉(1979)의 몸은 물가에 앉아 무릎을 세웠고, 마르고 길다. 먼바다에는 배 한 척이 떠 있다. 그의 화면에서 해녀는 이렇게 일하는 몸으로 그려진다. 〈바다는 해녀의 눈물〉(1989)에서는 두 사람이 바다 가운데 검은 바위 위에 몸을 웅크리고 붙어 있다.1 화가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뚱뚱한 해녀를 그리지 않는다."2 그는 해녀의 몸을 아무렇게나 그리지 않았다. 어떤 몸을 그릴지 골랐다.

제주 시기의 화면에는 해녀 말고도 마부와 농사꾼이 있다. 제13장에서 본 낮은 집은 사람이 풍토를 헤아려 지은 것이었다. 사람은 그 집에서 나와 풍토 속에서 일한다. 이 장은 일이 몸에 어떤 자세를 남기는지를 묻는다.

2바다·밭·말: 노동의 태스크스케이프

해녀의 물질, 밭갈이, 말을 다루는 일은 서로 다른 노동이지만 공통적으로 특정한 장소의 리듬에 몸을 맞춘다. 숨을 참는 시간, 파도의 주기, 밭의 계절, 말의 걸음은 노동의 자세를 조직한다.3

서론에서 언급한 팀 잉골드는 풍경을 정지된 배경으로 보기보다, 거주하는 존재들의 활동이 시간 속에서 얽히는 '태스크스케이프(taskscape)'로 이해했다.4 이 개념을 빌리면 변시지의 해녀·농사꾼·마부는 풍경 속에 배치된 인물들이 아니라 바다·밭·말과 함께 장소의 시간성을 수행하는 몸들로 읽힌다.

이 비교는 잉골드가 변시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 아니다. 노동하는 몸과 장소가 분리되지 않는 화면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분석적 병치다.

3장소가 바뀌면 노동의 도상도 바뀐다

서울 시기의 지게꾼과 나무 패는 사람, 제주 시기의 해녀·마부·농사꾼을 나란히 놓으면 노동의 도상이 장소와 함께 이동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연속성은 몸의 무게중심과 자세에 있다. 짐을 진 등, 쟁기를 잡은 몸, 물질 뒤 웅크린 몸은 노동을 '설명'하기보다 노동이 몸에 남긴 형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장소 변화는 단순한 소재 교체가 아니다. 노동의 리듬이 달라지고, 그 리듬이 화면의 신체 유형을 바꾼다.

4두꺼운 화면, 넓은 바탕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노동하는 인물은 반복적으로 다뤄졌다. 박수근의 인물들이 거친 물질적 표면과 한 몸이 되는 방식은, 넓은 바탕 속에 작은 인물을 두는 변시지와 대조된다.5

5일이 몸에 남긴 것

되풀이되는 일은 몸에 자세를 남긴다. 바다와 밭과 말이 저마다 다르게 남긴 자세다.

쟁기를 잡은 사람은 앞으로 기울었고, 물가의 해녀는 세운 무릎 쪽으로 몸을 모았다. 몸이 기운 쪽이 그 사람의 일을 말한다. 이 장은 노동의 리듬이 장소마다 다른 자세를 몸에 남기고, 그 자세가 화면의 신체 유형을 이룬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는 제주의 일에서 오지 않은 몸도 있다. 갈비뼈가 드러난 호랑이다. 제15장은 짐승의 몸을 본다. 먼저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 호랑이의 몸을 말렸는지를 묻고, 사람과 함께 일해 온 말로 넘어간다.

해녀는 바다에서 돌아온다. 바다의 일은 몸에 실려 온다.

주와 출처

  1. ↑ 〈해녀〉(1979)는 byunshiji.org 작품 100의 FŪDO 040, 〈바다는 해녀의 눈물〉(1989)은 FŪDO 011, 〈밭갈이〉(1979)는 FŪDO 042. 화면은 그 도판으로 확인.
  2. ↑ 화가가 생전에 한 말이다. 저자(아들)가 직접 들었다(저자 확인, 2026-09-29). 글로 남은 출처는 찾지 못했다. 제12장 5절에서 한 번 간접으로 옮겼다.
  3. ↑ 숙련된 해녀는 10미터 안팎까지 들어가 한 번에 1분가량 숨을 참는다. 제주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물질은 하루 최대 일곱 시간, 한 해 90일 안팎에 이르기도 한다. (국가유산청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주해녀문화」)
  4. ↑ Tim Ingold, "The Temporality of the Landscape," World Archaeology 25, no. 2 (1993): 152–174. 태스크스케이프 개념은 이 글에서 제안되었다.
  5. ↑ 박수근(1914~1965). 〈절구질하는 여인〉(1954)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에 있다. 여러 번 덧칠한 거친 표면을 '화강암 같다'고 하는 것은 그의 그림을 두고 널리 쓰이는 말이다. 「박수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