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II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논증 VIII · 25 / 34

싸우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다

폭풍·굽음·빈자리·기다림

자연의 힘 앞에서 변시지의 화면은 바람을 이기려 들지 않는다. 이 책은 이 태도를 '싸우지 않는 미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화면의 몸은 사라지지 않는다. 〈태풍〉의 굽은 사람, 굽은 노인, 빈 배 곁의 까마귀, 줄 없는 낚싯대는 낮아지고 곁에 남고 기다리는 여러 형태의 지속을 보여 준다. 시대의 힘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이 형식과 같지 않지만 굽은 몸에서 만난다. 이 책은 그 층위를 '저항의 자세'라 부른다.

논증의 얼개

주장
자연의 힘 앞에서 몸은 정복보다 조정을 택하는 형식(싸우지 않는 미학)을 얻고, 시대의 힘에 대한 작가의 기억(저항의 자세)은 그 형식과 같지 않으면서 굽은 몸에서 만난다. 두 층위는 서로를 지우지 않고, 상실과 기다림 앞에서도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 지속의 형식으로 남는다.
작품 증거
〈태풍〉(1983), 〈노송과 노인〉(1987), 〈이어도〉(1980), 〈길고 긴 그리움〉(1981).
1차 자료
2005년 구술의 "바람에 싸우면서 저항하면서 살아 남을라고 하는 집념"과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마음이 소재와 "심리적으로" 맞아 들어갔다는 회고, 인간은 "영원히 대자연을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예술과 풍토』의 서술, 『도덕경』 22장(비교 좌표).
반례
〈선착장〉(1979)처럼 상실과 기다림의 긴장이 강하지만 굽은 몸이 화면의 중심 문법으로 앞에 나서지 않는 작품이 있다. 정서적 긴장 전체를 '낮아져 남는 몸' 하나로 환원할 수 없다.
자료 한계
정치적 저항을 말한 2005년 구술은 1983년 〈태풍〉 제작 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스무 해 남짓 뒤의 회고적 자기해석이다. 따라서 '저항의 자세'는 후대 자기해석의 층위로 한정한다.
기존 미술사와의 차이
저항을 영웅적 몸·구호·직접적 정치 도상과 동일시하지 않고, 외부의 힘을 받은 뒤에도 형상이 지속하는 방식으로 한정해 읽는다.
잠정 결론
'싸우지 않는 미학'은 저항을 지우는 말이 아니고, '저항의 자세'는 모든 굽은 몸을 정치적 상징으로 만드는 말이 아니다. 두 분석어를 층위를 나누어 함께 쓸 때 작가의 구술과 화면의 사실을 함께 보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