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II/제17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7장 · 27 / 34

상실과 기다림

곁에 있음과 기다림

논증 VIII · 싸우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도〉(1980)에는 빈 배 곁에 까마귀 한 마리가 있다. 〈길고 긴 그리움〉(1981)에서는 사람이 줄 없는 낚싯대를 바다 쪽으로 뻗고 앉아 있다. 한 해 차이로 그려진 두 화면에는 모두 닿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장은 두 그림을 한 장에 놓고, 잃은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앞에서 몸이 어떤 자세로 남는지 묻는다.

사례 A빈 배와 까마귀 — 상실의 공간과 인접성

변시지, 〈이어도〉, 1980
도판 27. 변시지, 〈이어도〉, 1980. 작품 100 · FŪDO 063 작품 보기 →

1빈 배 옆의 새

〈이어도〉(1980)에는 빈 배 한 척이 있다. 그 옆에 까마귀 한 마리가 있다.

까마귀는 배 안에 있지 않다. 배 위에 있지도 않다. 옆에 있다. 배는 화면 오른쪽에 뱃머리를 왼쪽으로 두고 뭍에 올라 있다. 까마귀는 왼쪽 아래, 배와 조금 떨어진 땅에 서 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목을 배 쪽으로 뺐다. 부리는 벌린 듯 보인다.

변시지의 그림에는 까마귀 떼가 자주 나온다. 이 그림의 까마귀는 한 마리다. 무리에 섞이지 않고, 비어 있는 배 곁에 있다.

제목은 섬의 이름이다. 제6장은 이 그림을 1987년의 〈이어도〉와 나란히 놓고 반복과 차이를 보았다. 이 사례는 같은 화면에서 빈 배 곁의 까마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2돌아오지 않는 배, 소식을 전하는 새

이어도는 제주에 오래 전해 온 섬의 이름이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간다는 섬이면서, 사람들이 꿈꾸던 좋은 곳, 곧 이상향으로도 전해진다. 해녀의 노래를 비롯한 제주 민요에는 '이여도'라는 후렴이 나온다.1

바다에서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일은 이야기 속에만 있지 않았다. 변시지는 구술에서,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을 말했다. 태풍이 불면 고기잡이 나간 배가 가라앉고, 남자는 돌아오지 않아 여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2

까마귀도 이 섬에서 오래 사람 곁에 살았다. 화가는 『예술과 풍토』에 어린 날의 기억을 적었다. 초가 위에서 까마귀가 울면 손님이나 소식이 온다는 이야기가 하나다. 다른 하나는 차례를 지낸 뒤 지붕에 음식을 뿌리면 까마귀가 날아와 먹던 모습이다.3

구술에서는 까마귀가 앞날을 내다보는 새라고 했다. 독재의 시절에도 밝은 날이 오리라고 서로 속삭이는 것 같다고도 했다.2 네비스는 변시지의 까마귀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무언가를 알리며, 무관심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 적었다. 어부들에게는 불길한 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마을에 소식을 전하는 새에 가깝다고 했다.4

빈 배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까마귀는 소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례는 까마귀가 빈 배 옆에 있는 모습을 '곁에 있음'이라 부른다. 이 새의 자세다. 제15장에서 말은 노인이나 소나무처럼 거기 있는 것 옆에 멈춰 서 있었다. 이 그림의 까마귀는 비어 있는 자리 곁에 있다. 멈춤이 몸의 일이라면, 곁은 자리의 일이다.

3빈 형상과 검은 새

배는 한 척이고, 까마귀는 한 마리다. 하나씩 놓여 있어서 둘은 짝이 된다.

빈 배는 형상이면서 빈 곳이다. 배의 테두리 안이 비어 있다면, 빈 배는 선으로 둘러싼 작은 여백이 된다. 이 그림의 배가 그렇다. 검은 선으로 그린 테두리 안에 바탕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까마귀는 검다. 화면에서 까마귀는 검은색이 모인 작은 자리가 된다. 한쪽은 비어 있고, 한쪽은 검게 차 있다.

자리도 뜻을 만든다. 까마귀가 배 안에 있다면 배는 더 이상 비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까마귀가 배 위 하늘에 있다면 둘은 서로 다른 층에 놓일 것이다. 옆에 있을 때 둘은 서로를 가리지 않는다. 빈 배는 빈 채로 보이고, 까마귀는 까마귀로 보인다.

곁은 빈 것을 빈 채로 둔다.

제6장에서 보았듯 이어도는 한 번 그리고 끝낸 주제가 아니었다. 같은 섬의 이름 아래에서 화가는 여러 해에 걸쳐 바다와 배를 거듭 그렸다.5

4하늘을 나는 떼, 곁에 있는 하나

까마귀 떼가 하늘의 운동과 정서를 조직하는 서양 회화의 사례와 달리, 〈이어도〉의 까마귀는 한 마리로 빈 배 옆에 놓인다.6 네비스도 변시지의 화면에서 까마귀가 한 마리에서 십여 마리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적었다.4

이 비교에서 중요한 것은 전기적 상징이 아니라 수와 자리다. 떼로 날 때 까마귀는 하늘의 움직임이 되고, 한 마리로 남을 때는 한 자리의 곁이 된다.

5빈자리 곁에서

잃은 것 앞에서 사람은 흔히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 되찾으려 하거나, 잊으려 하거나,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한다. 이 그림의 까마귀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에서 확인되는 것은 자리뿐이다. 배는 비어 있고, 새는 그 옆에 있다.

이 책은 그 자리를 이렇게 읽는다. 곁에 있다는 것은 잃은 것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빈 것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있는 일이다. 싸우지 않는 미학은 여기서 모습을 하나 더 얻는다. 센 바람 앞에서 몸을 낮추듯, 상실 앞에서는 곁에 남는다.

화가의 말대로라면 까마귀는 앞날을 내다보는 새다. 빈 배가 지나간 일을 떠올리게 한다면, 까마귀는 올 날을 향해 있다. 그 사이에 지금의 곁이 있다. 그리움은 지나간 것을 향하고, 기다림은 올 것을 향한다. 이 그림은 둘을 한자리에 둔다.

〈이어도〉의 까마귀와 배 사이에는 조금의 거리가 있다. 붙어 있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 이 사례는 이 '곁에 있음'을 상실 앞에서 얻은 자세로 읽었다.

빈 배 곁의 까마귀는 잃은 것을 되돌리지 않고 그 곁에 남았다. 그렇다면 곁에 있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같은가. 사례 B는 줄 없는 낚싯대를 든 몸에서 이 물음을 묻는다.

사례 B줄 없는 낚싯대 — 기다림·비접속·시간의 형식

변시지, 〈길고 긴 그리움〉, 1981
도판 28. 변시지, 〈길고 긴 그리움〉, 1981. 작품 100 · FŪDO 083 작품 보기 →

1줄이 없는 낚싯대

〈길고 긴 그리움〉(1981)에는 바다를 향한 긴 낚싯대가 있다. 낚싯대 끝에는 줄이 없다. 사람은 왼쪽 아래에서 가운데로 뻗은 검은 바위 위에 앉아 있다. 등을 굽히고, 낚싯대를 오른쪽 위 바다 쪽으로 뻗었다. 수평선은 화면 위쪽에 검은 선 하나로 그어졌고, 그 선 아래 오른쪽 끝에 작은 배가 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낚시에는 대와 줄과 바늘이 있어야 한다. 이 그림에는 그 가운데 줄이 빠져 있다. 줄이 없으니 바늘을 물에 드리울 수도 없다. 이 낚싯대로는 아무것도 끌어올릴 수 없다.

그런데 제목은 물고기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움을 말한다. 그것도 길고 긴 그리움이다. 줄 없는 낚싯대를 든 몸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2줄은 대답이 오는 길이다

낚시하는 사람은 줄을 드리우고 기다린다. 물속에서 무언가 바늘을 건드리면 그 떨림, 곧 입질이 줄을 타고 대를 거쳐 손에 전해진다. 줄은 물속의 대답이 손에 닿는 길이다.

줄이 없는 낚싯대에는 그 길이 없다. 대답이 올 길이 없는데도 몸은 바다를 향해 있다. 이 기다림은 물고기를 향한 기다림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목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리움은 여기 없는 것을 향한 마음이다. 그리움은 지나간 것을, 기다림은 올 것을 향한다. 이 그림에서 둘은 한 몸에 있다. 그리움은 마음이고, 기다림은 그 마음이 몸에 드러난 자세다.

이 사례는 이 자세를 '기다림'이라 부른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몸을 둔 채, 시간 앞에 서 있는 일이다.

3닿지 않는 선

화면에서 낚싯대는 선이다. 긴 검은 선이 몸에서 뻗어 나와 바다 쪽으로 간다. 선은 조금 휘어 오르다 허공에서 끝난다. 낚싯대의 선은 방향을 가진다. 몸에서 바다로, 여기에서 저기로 향한다.

그런데 이 선은 닿지 않는다. 낚싯대 끝에서 선이 멈추고, 그 너머로는 빈 곳이 이어진다. 줄이 있었다면 선은 물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제11장에서 본 화가의 노트 한 줄, 그리지 않은 것이 그린 것을 지탱한다는 말이 여기서 다시 읽힌다.7 이 그림에서 그리지 않은 것은 줄이다. 줄을 그리지 않은 것은 그저 생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낚싯대는 길게 그려졌고, 줄만 없다. 그 생략이 낚싯대를 고기잡이의 도구에서 기다림의 몸짓 쪽으로 옮겨 놓는다. 제목의 그리움은 거기서 읽힌다.

제목의 '길고 긴'도 화면과 이어진다. 낚싯대는 길다. 닿으려는 몸짓이 길수록, 닿지 않은 거리도 또렷해진다.

줄 없는 낚싯대는 이 그림에만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작품마다 짧은 설명을 붙인 글 「그림의 언어」를 따르면, 1978년의 〈낚시〉와 1993년의 〈절벽〉에도 줄 없는 낚싯대가 보인다.8 도판으로 확인되면, 줄 없는 낚싯대는 한 화면의 도상을 넘어 열다섯 해에 걸쳐 되풀이된 모티프가 된다.

4이어지는 줄, 없는 줄

변시지가 스스로 영감을 받은 책으로 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노인과 바다가 팽팽한 줄로 이어지는 서사다.9

그 서사에서 줄은 싸움의 줄이면서 노인과 바다를 잇는 줄이다.10 〈길고 긴 그리움〉은 반대로 줄 자체를 생략한다.

동아시아 전통에도 물고기보다 '때'를 기다리는 낚시 서사가 있다.11 그러나 그 기다림에는 만남이라는 결말이 있다. 〈길고 긴 그리움〉에는 그런 결말이 없다.

고기와 이어질 줄도, 때를 낚을 바늘도 없다. 이 기다림의 끝은 그림에 없고, 제목은 그리움이 길다고만 말한다.

이 차이 때문에 이 그림의 기다림은 성취를 향한 기다림보다, 닿지 않음 자체를 견디는 시간에 가깝다.

5시간 앞의 자세

빈 배 곁의 까마귀와 줄 없는 낚싯대를 든 몸. 둘은 무엇이 다른가. 곁은 자리의 일이다. 까마귀는 지금 여기, 빈 것 곁에 있다. 기다림은 시간의 일이다. 낚싯대를 든 몸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서 있다. 곁은 자리를 지키고, 기다림은 시간을 지킨다.

논증 VI~VIII의 몸들은 바람 앞에서 낮아지고(제12장), 기울고, 땅에 붙었다(제13장). 바다와 밭에서 일했고(제14장), 섬에 없던 호랑이까지 같은 손에서 마른 몸을 얻었으며, 말은 사람 곁에 멈춰 섰다(제15장). 폭풍을 견디고, 굽되 끊기지 않았다(제16장). 그리고 빈 배 곁에 있었다(제17장 사례 A). 이 자세들은 대개 바람이나 빈자리 앞에서 얻은 것이었다. 기다림은 시간 앞에서 얻는 자세다.

〈길고 긴 그리움〉의 낚싯대는 물에 닿기 전에 끝난다. 그 끝에서부터는 빈 곳이다. 이 사례는 기다림을 시간 앞의 자세로 읽었다.

곁은 자리를 지키고, 기다림은 시간을 지킨다. 두 사례는 잃은 것과 오지 않은 것 앞에서도 몸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로써 논증 VI~VIII(제12~17장)은 하나의 잠정 결론에 닿는다. 풍토는 몸에 자세를 남기고, 그 자세는 이기려 들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 형식으로 화면에 선다. 이 자세들은 논증 IV와 V(제8~11장)에서 본 형식, 곧 마른 풀잎색과 검은 선과 여백 위에서 섰다. 논증 IX는 이 형식과 자세를 동시대 한국 회화와의 비교 속에 놓는다. 제18장은 같은 시기 한국 회화가 걸은 다른 길들 곁에 변시지의 길을 나란히 두고, 제19장과 제20장은 그 비교를 탈중심적 모더니즘과 풍토의 번역이라는 물음으로 넓힌다.

줄은 그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 기다림이 있다.

주와 출처

  1. ↑ 이어도 설화와 민요 후렴: 연합뉴스(변지철), 「[다시! 제주문화] (40) 환상의 섬이자 실재하는 섬 '이어도'」, 제이누리 게재.
  2.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5차 구술(2005년 1월 18일, 기당미술관). 까마귀에 관한 말은 219~220쪽, 태풍과 배의 침몰에 관한 말은 221쪽.
  3.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제주에 산다」 가운데 '원시(原始)에의 향수'.
  4.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5. ↑ 〈이어도〉의 연도: 「그림의 언어」 수록 목록 기준 1977, 1978, 1980, 1987, 1991(두 점), 2005. 1978년 작(46×38cm)은 『예술과 풍토』에 도판이 실려 있다.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63)으로 확인.
  6. ↑ 반 고흐 미술관 소장품 설명 「Wheatfield with Crows」(1890);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그 아내 요 반 고흐봉어르에게 보낸 편지 898(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7월 10일경). 편집자 주는 편지가 말하는 큰 캔버스로 〈거친 하늘 아래 밀밭〉, 〈까마귀가 나는 밀밭〉, 〈도비니의 정원〉을 꼽는다.
  7. ↑ 변시지의 노트에 적힌 문장이다(저자 확인, 2026-09-29). 제11장 주1과 같은 문장.
  8. ↑ 「그림의 언어」의 작품 설명: 1978년 〈낚시〉("낚싯줄 대신 기다림이 바다에 잠기면"), 1993년 〈절벽〉("낚싯줄 없는 낚싯대로").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83)으로 확인.
  9.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10.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1952).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1. ↑ 사마천(중국 한나라의 역사가), 『사기』 「제태공세가」. 강태공의 이름은 여상이며, 그가 만나려 한 사람은 주나라의 서백, 곧 왕이 되기 전의 문왕이다. 곧은 바늘과 미끼 없는 낚시는 『무왕벌주평화』, 『봉신연의』 같은 후대의 이야기책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