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I/제12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2장 · 20 / 34

바람의 신체

풍토가 몸에 남기는 자세

논증 VI · 풍토는 자세를 조직한다

변시지, 〈바람 속에서〉, 1984
도판 18. 변시지, 〈바람 속에서〉, 1984. 작품 100 · FŪDO 015 작품 보기 →

1바람 속의 두 몸

1984년에 그린 〈바람 속에서〉에는 말 한 마리와 사람 하나가 있다.1 둘 다 화면 왼쪽 아래에 있다. 말은 고개를 숙였고, 갈기는 한쪽으로 쏠렸다. 사람은 말의 머리 아래에 서서 고개를 숙인 듯 보인다. 위로는 새 두 마리가 날고, 검은 구름 같은 붓자국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제주는 태풍이 자주 지나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바람은 이 섬의 풍토에서 낯선 말이 아니다.

논증 IV와 V(제8~11장)에서 보았듯 바람 자체는 그려지지 않는다. 화면에 있는 것은 바람을 맞은 것들이다. 그 장들이 풍토가 그림에 남긴 형식을 보았다면, 논증 VI부터 VIII까지(제12~17장)는 풍토가 몸에 남긴 자세를 본다. 이 장의 물음은 센 바람을 맞을 때 몸이 어떻게 되는가이다.

2낮아지는 것들

제주 시기의 여러 그림에서 바람을 맞은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은 몸을 낮추고 한쪽으로 기울인다. 소나무는 기운다. 초가는 땅에 붙은 듯 낮다. 여러 그림에서 바람은 사물을 날려 보내기보다 낮추는 힘처럼 보인다.

낮아진 것들은 대개 쓰러져 있지 않다. 낮아진 채로 화면에 남는다. 이 장이 따라가는 동사는 '낮아진다'이다.

3자세라는 말

이 책에서 자세란 몸이 자신을 둘러싼 힘과 관계 맺는 방식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을 뜻한다. 힘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바람 속에서 우산을 기울여 잡은 사람의 몸에는 바람을 받는 모양과 바람에 맞서는 모양이 함께 나타난다.

자세는 기울기, 높이, 방향의 세 가지로 읽을 수 있다. 몸이나 사물의 중심이 곧게 서 있지 않고 한쪽으로 기운다. 몸이 낮아지고, 사물이 땅 가까이 붙는다. 여러 사물이 비슷한 쪽으로 기울어, 같은 힘을 받는 듯한 방향성이 생긴다.

제10장에서 검은 선은 자세를 세운다고 했다. 선이 자세를 화면에 붙잡는 방법이라면, 자세는 풍토가 몸에 남긴 흔적이다.

4바람의 운동, 바람을 오래 맞은 몸

서양 회화에는 붓질 자체가 바람의 운동을 가시화하는 사례가 있다.2 변시지의 화면에서는 바람을 재현하는 제스처보다, 바람을 오래 맞은 존재의 자세가 움직임을 말한다. 한쪽은 운동을, 다른 쪽은 지속된 신체 변형을 전면화한다.

5서로 다른 몸들

그의 그림에는 낮아진 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지 않는 말, 물질하는 해녀, 잎을 떨군 나무, 굽은 노인이 있다. 부탁을 받아 그린 호랑이도 있다. 그 호랑이는 갈비뼈가 드러난 몸이다.

화가는 생전에 달리는 말을 그리지 않고, 뚱뚱한 해녀를 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3 화면도 그 말과 같다. 그림 속 말들은 서 있거나 느리게 걷고, 〈해녀〉(1979)의 몸은 마르고 길다. 두 마디는 같은 일이 아니다. 앞의 마디는 움직임을 골랐고, 뒤의 마디는 몸을 골랐다. 그는 풍토 속의 몸을 아무렇게나 그리지 않았다.

일과 계절, 먹이와 기후의 조건은 몸에 직접 남는다. 그의 화면에는 그런 흔적이 드러나는 몸이 자주 나타난다. 이 장은 이 몸들을 곧바로 가난이나 고통의 표시로 읽지 않고, 먼저 몸 그대로를 본다. 색에도 시간이 남고, 몸에도 시간이 남는다.

이 몸들은 서로 같지 않으므로 하나의 뜻으로 묶을 수 없다. 어떤 것은 기울고, 어떤 것은 낮아지고, 어떤 것은 멈춘다. 그 서로 다른 몸에 풍토와 관계 맺어 온 자세가 남는다.

이 장은 바람이 사물을 날려 보내기보다 낮추는 힘으로 화면에 나타나며, 그 힘이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자세로 남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지는 장들은 이 몸들을 하나씩 따라간다. 제13장은 그 가운데 자리를 옮길 수 없는 것들, 뿌리를 옮기지 못하는 나무와 사람이 지은 집이 바람을 어떻게 맞는지를 본다.

바람은 지나간다. 몸에는 자세가 남는다.

주와 출처

  1. ↑ 〈바람 속에서〉(1984).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15)으로 확인. 〈해녀〉(1979)는 FŪDO 040.
  2. ↑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1889). 프랑스 남부 생레미에서 그렸으며, 같은 구도의 그림이 여러 점 있다.
  3. ↑ 두 마디 모두 화가가 생전에 한 말이다. 저자(아들)가 직접 들었다(저자 확인, 2026-09-29). 글로 남은 출처는 찾지 못했다. 달리는 말에 관한 마디는 제15장에서, 해녀에 관한 마디는 제14장에서 그의 말 그대로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