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기 / 5 / 5
5번째 이야기
제주에서 세계로
한 섬에서 시작된 그림, 서로 다른 삶에 닿는 마음
제주를 모르는 사람도작은 배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 있다.누군가를 기다려 본 마음은그 앞에 조금 더 머문다.
묻는 것 제주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그림은 무엇을 건넬까?
1 그림 앞에 선 사람
2007년,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한국관에 그의 그림 두 점이 걸렸다. 〈이대로 가는 길〉과 〈난무〉다. 두 점은 열 해 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2017년에 돌아왔다. 〈이대로 가는 길〉은 영어로 'Going the Way as It Is'라 소개되었다. 받아들임과 이어 감이 한 제목에 들어 있다.
그 앞에 선 사람들 대부분은 풍토라는 말을 몰랐을 것이다. 제주가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은 그 말 없이도 그들 앞에 있었다. 소나무 여러 그루가 선 낮은 언덕. 흰 길.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 그 앞의 말 한 마리. 먼바다의 배 한 척. 기운 선과 한 가지 색, 작은 사람과 먼 배는 제주를 모르는 눈에도 보인다.
작은 배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데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마음이면 된다.
2 아는 만큼 더 보이는 것
보인다는 것이 곧 같은 뜻으로 읽힌다는 말은 아니다.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캐럴 네비스는 그의 그림의 돌담과 굽은 소나무와 파도에서 바람을 읽었다. 제주의 생활을 다 알지 못해도 가능한 읽기다. 그러나 〈이어도〉의 빈 배와 까마귀는 조금 다르다.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간다는 섬이면서, 사람들이 꿈꾸던 좋은 곳이기도 하다. 화가는 구술에서 말했다. 태풍이 불면 고기잡이 나간 배가 가라앉고,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알면 빈 배는 다르게 보인다.
그는 작품 감상이 지식의 전달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보는 사람이 자기 경험을 더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했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지역의 자취를 지워서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대체될 수 없는 구체성이 오히려 출발점이 된다.
제주를 모르는 사람은 기다림을 보고, 제주를 아는 사람은 그 기다림이 어디서 왔는지 본다. 둘 다 그림 앞에 서 있다.
3 흥겨움의 주인공
〈어느 흥겨운 바닷가의 한나절〉은 1979년의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 속에 사람이 없다. 왼쪽에 마른 나무 한 그루, 그 가지에 까마귀 세 마리. 오른쪽 물 위에 해가 낮게 떠서 물결에 빛을 남기고, 그 아래 작은 배 한 척이 있다. 사람은 없지만 그림은 멈춰 있지 않다.
바다는 사람이 없어도 바다다. 제목의 흥겨움은 사람의 기분만 가리키는 말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계속되는 세상의 움직임을 그렇게 부른 것일 수 있다. 흥겨움의 주인공은 바다와 바람이다. 그림의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한 걸음 물러난다.
그는 자기 삶을 유배라 하고, 그림 그리는 일을 축복이라 했다. 그 둘 사이에는 작업이 있었다. 한 섬에서 오래 살아 낸 시간이 선과 색과 빈 곳이 되었고, 그 형식은 섬을 모르는 사람 앞에도 선다. 누구나 똑같이 감동하는 그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이 만날 수 있는 그림이다.
더 깊이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풍토는 형식을 낳는다』가 있다. 키퍼가 독일의 땅을, 골즈워디가 장소의 재료를 작품에 들였다면, 변시지는 장소를 살아 낸 몸을 선과 색으로 옮겼다. 그 비교는 그 책에 두었다.
글·기획·편집 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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