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V/제9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9장 · 14 / 34
거리와 평면성
먼 배와 평평한 화면
논증 IV · 풍토는 시선과 거리의 체계다
〈흔들리는 수평선〉(2005)의 먼바다에는 배 한 척이 있다. 사물이 적고 색이 한 가지로 모인 이 화면은 평평한 쪽으로 읽히는데, 그 작은 배 하나가 바다를 멀게 만든다. 이 장은 먼 배가 거리를 만드는 방식(사례 A)과, 깊이가 줄어든 화면에 그 거리가 남는 까닭(사례 B)을 함께 묻는다. 둘은 섬에서 산 시선이 거리를 어떻게 조직하는가라는 한 물음의 두 면이다.
사례 A거리의 형식 — 먼 배, 수평선, 섬의 시선
1새가 아니라 배
〈열대의 태양〉(1983)에는 화면 가운데 키 큰 검은 소나무가 서 있고, 그 곁에 말 한 마리가 있다. 해는 왼쪽 위에 떠 있다. 그리고 먼바다에 배 한 척이 있다. 〈흔들리는 수평선〉(2005)에도 절벽 위의 노인과 말 한 마리, 그리고 먼 배 한 척이 있다.1
수평선 가까이에 있는 이 작은 검은 형태는 얼핏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배다. 가까이 보면 작은 돛대가 서 있다. 적어도 이 사례에서 살피는 두 그림에서 배는 한 척이다.
이 작은 배 한 척은 화면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2가까운 것과 먼 것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바다에 배 한 척이 있고, 그보다 가까운 곳에 다른 것들이 있다. 한 그림에서는 소나무와 말이, 다른 그림에서는 노인과 말이다. 보는 눈은 가까운 것에서 먼 배로 옮겨 가기 쉽다.
그림 속 거리는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에서 생긴다.
1983년과 2005년, 스무 해 넘게 떨어진 두 그림에서 이 짜임이 되풀이된다. 한 번 쓰고 만 장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3크기, 자리, 수
이 거리는 크기와 자리와 수로 만들어진다.
배는 아주 작다. 먼 것은 작게 보인다는 원근의 가장 단순한 원리가 여기서 쓰인다. 작은 배 하나가 바다를 멀게 만든다.
제8장에서 보았듯 수평선은 보는 사람의 눈높이다. 이 그림들에서 배는 그 수평선 가까이 놓인다. 화면에서 바다가 가장 멀어지는 자리다.
배는 한 척뿐이다. 작은 배 주위로 넓은 바다가 남는다. 배 한 척은 바다의 넓이를 재는 눈금처럼 쓰인다.
이 두 그림에서 거리는 많은 것을 그려서 생기지 않는다. 하나를 멀리 놓음으로써 생긴다.
4절벽 위의 사람과 먼 돛배
19세기 유럽 풍경화에도 가까운 절벽과 먼 돛배를 병치해 깊이를 만드는 사례가 있다.2 중요한 것은 유사성보다 차이다. 그 화면에서는 여러 돛배가 깊이를 확장하지만, 변시지의 두 그림에서는 배 한 척만이 넓은 바다의 거리를 측정한다.
5가까운 땅, 먼 수평선
제주의 여러 해안에서는 땅의 끝 너머로 바다와 수평선이 열린다. 변시지의 그림에서도 가까운 땅과 먼 수평선이 자주 함께 놓인다. 이때 먼 배는 가까운 땅과 먼바다 사이의 거리를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이런 화면은 섬에서 살아가는 시선과 연결해 읽을 수 있다.
그 배가 떠나는 배인지 돌아오는 배인지 그림은 말하지 않는다. 알 수 없기에 보는 눈은 먼 곳에 오래 머문다.
오래 섬 안에서 산 눈은 가까운 것만 보지 않는다. 자꾸 먼 곳까지 간다. 풍토는 가까운 것만 바꾸지 않는다. 먼 것을 보는 방식도 바꾼다.
이 사례가 살핀 그림들에서 배는 한 척이고, 수평선 가까이에 있다. 그 배 한 척이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가 바다를 넓힌다.
배는 한 척이다. 그래서 바다는 넓다.
사례 A는 먼 배가 크기와 자리와 수로 거리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제주 시기의 화면은 깊이를 만드는 장치를 줄인 평평한 화면이기도 하다. 사례 B는 깊이가 줄어든 화면에서 거리가 어떻게 남는지를 모더니즘의 평면성 논의와 함께 묻는다.
사례 B평면성과 거리 — 모더니즘의 표면과 잔존하는 세계
1논증 IV의 첫 그림으로 돌아가기
제8장에서 본 〈흔들리는 수평선〉(2005)으로 돌아간다. 절벽 위의 노인, 말 한 마리, 먼바다의 배 한 척이 있다.
제주 시기의 화면은 밝은 마른 풀잎색과 검은색으로 모이고, 사물은 적고, 빈 곳은 넓다. 빛과 그림자의 명암은 사물에 둥글고 두툼한 부피를 준다. 이 화면의 강한 대비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검은 선과 형상을 세울 뿐이다. 그래서 화면은 평평한 쪽으로 읽힌다.
그런데 먼 배를 가리면 바다는 벽처럼 평평하게 읽히고, 배가 드러나면 다시 멀어진다. 깊이는 줄었는데 왜 멀어 보이는가.
2깊이와 거리
그림 속 공간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깊이를 만들어 내는 장치다. 제8장에서 본 선원근법의 모이는 선, 밝음과 어둠의 차이, 그리고 공기원근법이 화면 안쪽으로 공간이 이어지는 느낌을 만든다. 공기원근법은 먼 곳으로 갈수록 색과 명암의 차이를 줄이고 형태를 흐리게 하여 대기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멀고 가까움의 관계다. 사물의 크기와 위치를 보고 어느 것이 가깝고 어느 것이 멀리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살피는 후기 작품은 멀어질수록 색과 형태를 흐리게 하는 방식도, 강한 명암으로 부피를 빚는 방식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까운 것과 먼 것의 차이는 남아 있다.
3깊이를 강조하지 않고도
거리는 무엇으로 생기는가. 크기와 자리, 그리고 개수다.
배의 크기는 경험으로 알려져 있다. 사례 A에서 본 대로, 작은 크기와 수평선 가까운 자리가 배를 멀게 만든다.
이 화면은 전통적인 원근의 장치를 많이 쓰지 않고도 거리를 만든다. 거리는 화면을 깊숙이 파서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평평한 화면 위에서도 크기와 자리의 관계로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멀다'고 읽어 내는 것은 보는 사람의 눈이다.
4평면성 이후의 모더니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회화」에서 회화가 자기 매체의 조건, 특히 캔버스의 평면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모더니즘의 핵심으로 설명했다.3 이 서술은 20세기 회화의 한 강력한 계보를 제시했지만, 재현과 장소성이 지속된 비서구 회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다.
변시지의 후기 화면은 평면성을 숨기지 않는다. 밝은 색면과 검은 선은 물감이 놓인 표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표면은 재현을 폐기하지 않는다. 사람·말·집·배는 여전히 관계적 거리를 만들고, 수평선은 세계의 방향을 남긴다.
따라서 그의 회화를 그린버그식 평면성의 '뒤늦은 사례'로 배치하기보다, 평면성과 재현, 표면과 거리의 긴장을 동시에 유지한 별도의 모더니즘적 구성으로 보는 편이 생산적이다. 이 긴장은 이후 이 책이 말하는 풍토모더니즘의 중요한 형식적 조건이 된다.
5줄였지만 없애지 않았다
변시지는 깊이를 약화했지만 세계를 제거하지 않았다. 평면을 받아들이면서도 가까운 땅과 먼 수평선의 관계를 남겼다. 모더니즘의 자기반성은 여기서 매체의 '순수성'으로 수렴하지 않고, 한 장소에서 살아온 시선이 화면을 어떻게 다시 조직하는가라는 문제로 이동한다.
이 때문에 먼 배는 중요하다. 배는 전통적 원근법의 잔여이면서 동시에 섬의 시선이 멀어지는 방향을 고정하는 작은 표지다. 평면과 거리는 서로를 취소하지 않고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
이 공존은 변시지 회화를 단순한 재현주의와 단순한 형식주의 사이 어느 한쪽에 배치하기 어렵게 한다. 바로 그 중간 지대가 이 책이 풍토와 모더니즘을 함께 논하는 이유다.
두 사례는 거리가 화면을 깊이 파서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은 배 하나의 크기와 자리가 평평한 화면 위에 먼 곳을 남기고, 그 먼 곳을 읽어 내는 것은 섬에서 산 눈이다. 논증 IV의 잠정 결론은, 풍토가 배경이 아니라 수평선과 먼 배와 눈높이로 짜인 시선과 거리의 체계라는 것이다. 논증 V는 이 넓은 화면을 채운 색과 선으로 옮겨 가, 제10장에서 마른 풀잎색과 검은 선을 다룬다.
화면은 평평하다. 그러나 세계와의 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와 출처
- ↑ 〈열대의 태양〉(1983)과 〈흔들리는 수평선〉(2005).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08·007)으로 확인.
-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뤼겐섬의 백악 절벽(Kreidefelsen auf Rügen)〉(1818년경), 캔버스에 유채, 90.5×71cm, 빈터투어 미술관(오스카 라인하르트 컬렉션).
- ↑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모더니즘 회화(Modernist Painting)」. 1960년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 방송 강연으로 처음 발표되었고, 고친 글이 『Art and Literature』 4호(1965)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