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기 / 3 / 5
3번째 이야기
굽은 선
바람을 맞은 몸의 모양
소나무가 기울었다.그 곁의 사람도 등을 굽혔다.둘은 같은 언덕에 서 있다.
묻는 것 사람과 나무의 선은 왜 기울어 있을까?
1 줄기와 등
〈노송과 노인〉은 1987년의 그림이다. 마른 풀잎색 언덕에 노인이 서 있다. 곁의 소나무도, 노인의 등도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조금 기울어, 오래 선다.
그의 제주 그림에서 검은 선은 곧게 뻗기보다 휘고 기운다. 소나무의 줄기도, 사람의 등도, 낮은 지붕의 선도 그렇다. 휘는 방향은 화면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맞춰진다. 선은 매끈하지 않다. 두께와 진하기가 고르지 않고, 붓질의 흔적이 거칠게 남는다. 그 고르지 않은 선이 매끈한 윤곽보다 움직임과 긴장을 느끼게 한다.
검은 선 하나는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 가른다. 마른 풀잎색이 모든 것을 한데 묶는 화면에서 사물을 구별하는 것은 선이다. 기록한다. 선이 비슷한 방향으로 휠 때, 화면에는 같은 힘이 여러 사물에 작용하는 듯한 방향이 생긴다. 세운다. 기운 채로 이어지는 선은 쓰러진 모양이 아니라 버티는 자세를 만든다.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바람을 맞은 것들이다. 변시지는 바람을 그리지 않았다. 바람을 맞은 자세를 그렸다.
2 말과 해녀
〈바람 속에서〉의 말은 고개를 숙였고, 갈기는 한쪽으로 쏠렸다. 사람은 말의 머리 아래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해녀〉의 몸은 물가에 앉아 무릎을 세웠고, 마르고 길다. 먼바다에는 배 한 척이 떠 있다.
이 몸들은 같은 이유로 굽은 것이 아니다. 바람을 받는 나무가 있고, 일하고 돌아온 몸이 있고, 나이를 먹은 사람의 등이 있다. 화가는 몸을 아무렇게나 그리지 않았다. 뚱뚱한 해녀를 그리지 않는다고 했고, 달리는 말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림 속 말들은 서 있거나 느리게 걷는다. 달릴 수 있는 몸이 사람 곁에 멈춰 선다.
검은색을 택한 까닭도 그가 말했다. 우리는 옛날부터 편지를 쓸 때에도 먹으로 썼고, 사람의 머리와 눈동자도 검다. 누런 바탕을 얻은 뒤 그는 검은색만으로 그려 보기 시작했다.
3 굽음과 쓰러짐
굽은 선은 방향을 바꾸면서도 이어지고, 부러진 선은 끊어진다. 그의 선은 끊어질 듯 거칠지만 형상을 끝까지 붙든다. 몸은 작아져도 지워지지 않는다. 기운 나무는 쓰러진 나무와 다르다. 뿌리는 땅에 있고, 줄기는 기운 채로 서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굽음을 영웅의 자세로 치켜세울 일은 아니다. 굽은 몸은 바람을 정면으로 밀어내는 몸이 아니다. 몸을 낮추고, 중심을 기울이며, 지팡이나 말이나 나무와 관계를 맺는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다. 다만 남는다.
변시지의 선은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견디는 힘을 세운다.
〈노송과 노인〉에서 노인의 등과 소나무의 줄기는 모두 기울어 있다. 그러나 둘 다 화면에 남아 있다. 선이 기운 쪽으로 눈이 따라간다. 그 방향은 화면 밖까지 이어진다.
글·기획·편집 변정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