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그림 읽기 / 2 / 5

2번째 이야기

마른 풀잎색

하늘과 바다를 한데 묶는 색

변시지, 〈고독〉, 1995 · FŪDO 014

하늘과 바다가 같은 빛이다.그 사이의 작은 사람도오래 볕을 받은 자리에 있다.

묻는 것 왜 하늘과 바다와 땅이 같은 색 안에 있을까?

1 한 색 안에

〈고독〉은 1995년의 그림이다. 언덕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사람 하나가 앉아 있다. 멀리 배 한 척, 가까이 새 한 마리. 그런데 하늘과 바다와 언덕이 모두 한 색이다. 마른 풀 같은 붓결이 화면 전체를 쓸고 지나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서로 다른 색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 가지 색이 밝고 어둡게만 달라지며 화면 전체를 감싼다.

그의 제주 그림은 사물을 고유색으로 알아보게 하지 않는다. 사과를 빨갛게, 잎을 푸르게 칠하지 않는다. 하늘도 바다도 땅도, 집도 새도 사람도 같은 색 안에 놓인다. 사물은 색이 아니라 어두운 형태와 검은 선으로 구별된다. 〈고독〉에서 언덕은 검은 선 하나로 하늘과 나뉘고, 나무는 검은 형태로 서며, 그 아래 앉은 사람은 검은 점 하나다.

색은 묶고, 선은 가른다. 이 화면을 읽는 첫 번째 열쇠다.

2 이름

이 색은 흔히 황토색이라 불린다. 황토색이라고 부르면 먼저 흙이 떠오른다. 색의 뜻이 땅과 장소 쪽으로 기운다.

이 아카이브는 이 색을 마른 풀잎색이라 부른다. 가을 들판에 선 풀의 색이다. 풀은 살아 있었고, 볕을 받았고, 바람을 맞았고, 말랐다. 황토색이 물질의 이름이라면, 마른 풀잎색은 시간을 지나온 색의 이름이다.

화가 자신은 이 색의 시작을 이렇게 돌아보았다. 제주에 내려와 그때까지 쓰던 화려한 색을 버리고 고민하던 어느 날, 해변에서 흰 것이 햇빛을 받아 하얗다 못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볕이 이렇게 강한 섬이라면 모든 고유색이 변한다. 제주의 갈옷 색에서 온 것 아니냐는 말에는 다르다고 답했다. 갈옷 색이라면 열 점을 그려도 다 같겠지만, 자기 그림은 그릴 때마다 누런 톤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색은 그림마다 조금씩 다르다. 흰색에 가까운 노랑이 있고, 갈색에 가까운 노랑이 있다. 모두 마른 풀잎색이지만 같은 그림은 없다.

한순간의 햇빛이 아니다. 오래 되풀이되어 쌓인 볕이다.

3 밝음

〈열대의 태양〉에는 해가 그려져 있다. 왼쪽 위, 작은 노란 원에서 검은 붓질이 빛살처럼 뻗는다. 그런데 이 해가 만드는 그림자는 화면 어디에도 없다. 소나무 밑에도, 말 밑에도 그늘이 없다. 밝음은 한쪽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마른 풀잎색을 넓게 칠한 면 전체에 퍼져 있다. 어둠은 그림자가 아니라 검은색이라는 색에서 온다. 그래서 밝고 어두움의 대비는 강해도 빛의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 밝은 바탕 위에서 검은 선이 소나무를 세우고, 말을 세우고, 집을 두른다. 색이 한데 묶은 세계를, 선이 하나씩 가른다.

마른 풀잎색은 죽은 색이 아니다. 오래 견딘 생명의 색이다.

처음에는 나무 아래의 사람이 보인다. 다시 보면, 그 사람이 앉아 있는 색이 보인다.

글·기획·편집 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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