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그림 읽기 / 1 / 5

1번째 이야기

자기 그림에 이르는 길

일본과 서울을 지나 제주로

변시지, 〈자화상〉, 1944 · FŪDO 038

얼굴을 그리던 손이 있었다.기와를 하나씩 세던 눈이 있었다.그 손과 눈이 제주로 왔다.

묻는 것 세밀하게 그리던 화가는 어떻게 몇 개의 선을 남기게 되었을까?

1 얼굴

〈자화상〉은 1944년의 그림이다. 오사카미술학교에 다니던 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그렸다. 어두운 웃옷에 흰 깃. 얼굴은 거의 정면이고, 눈은 그림 밖을 본다. 빛은 왼쪽 위에서 온다. 이마와 한쪽 뺨이 밝고, 다른 쪽 뺨은 그늘에 들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얼굴을 둥글게 빚는다.

미술학교의 인물화는 보는 훈련이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 뼈가 어디서 솟는지, 눈은 그것을 정확히 옮기도록 길러진다. 도쿄에서 만난 스승 데라우치 만지로는 작업실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제자가 그림을 가져가면 어디가 어떻다고 말할 뿐이었다. 제자는 돌아와 고쳤고, 다시 가져갔다. 좋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였다.

그는 뒤에 이렇게 말했다. 인물은 속임수가 없다. 풍경은 조금 크거나 작게 그려도 그런 풍경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은 조금만 어긋나도 눈에 띈다. 몸을 속일 수 없다는 감각은 이때 몸에 붙었다.

2 기와

1957년 그는 서울로 왔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날마다 창덕궁 뒤뜰의 비원에 나갔다. 하루 세 시간쯤 그렸다. 기와를 한 장 한 장 세어 가며 붓을 댔고, 10호 한 점에 한 달이 걸렸다. 잎 하나에 칠이 대여섯 겹 올라갔다.

〈가을 애련정〉이 그 시절의 그림이다. 연못가의 정자. 지붕의 기와는 한 장 한 장 그려졌고, 난간의 살도 하나씩 서 있다. 물에는 정자가 거꾸로 비친다. 뒤로는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가 빽빽하다. 귀국한 뒤 주로 풍경을 그리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짧게 답했다. 그거는 비원 때문에.

같은 시절 그의 화면에는 짐 진 지게꾼도 있었다. 궁궐의 기와를 세는 눈과 길 위의 등을 보는 눈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 두 눈은 뒤에 제주로 함께 갔다.

3 제주

1975년 그는 제주로 갔다. 열하루만 있다 갈 생각이었다. 한 학기가 되고, 한 해가 되고, 서른여덟 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도 비원의 방식으로 제주를 그렸다. 돌아온 이듬해의 〈제주〉에서 산은 보랏빛이고 하늘에는 분홍빛이 돈다. 바다는 푸르고, 말도 푸르다. 그러나 그곳에 살면서 그는 느꼈다. 겉으로만 제주도지, 내용적으로는 아니다. 소재가 제주라고 해서 제주의 그림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비원의 우아하고 화려한 색을 모두 버렸다. 그 자리에 마른 풀잎색이 들어섰다. 그러나 기와를 세던 눈은 그대로 가져갔다. 제주에서도 그는 폭풍을 보고 집에 돌아와 그렸다. 보고 또 보아 머리에 담는 법은 비원에서 몸에 붙은 것이었다. 도쿄에서 팔레트에서 지웠던 검정도 돌아왔다.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과 나무를 긋는 선으로. 굽은 등을 긋는 선 하나가 그 몸의 무게를 받친다. 도쿄에서 몸을 익힌 손이 그 선을 긋는다.

제주에 온 지 열세 해가 지난 1988년, 그는 썼다. 제주는 이제 나에게 예술적 공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적 근거이자 방법이 된 셈이다.

배운 것은 버려지지 않았다. 선 하나의 무게가 되었다. 변시지의 제주 그림 뒤에는, 오래 보고 오래 그린 손이 있었다.

글·기획·편집 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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