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II/제7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7장 · 11 / 34
유화로 쓴 사의와 덜어냄
사의의 번역과 덜어냄
논증 III · 재현은 반복과 덜어냄을 통과해 표현으로 이동한다
『예술과 풍토』(1988)에서 변시지는 들라크루아와 노자의 말을 한 장에 나란히 두었다. 2006년에는 배 한 척만 남은 그림에 〈점 하나〉라는 제목을 붙였다. 앞의 것은 오래 익힌 재현의 기술을 다른 회화 전통의 언어로 옮기는 문제이고, 뒤의 것은 무엇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이 장은 두 사례를 함께 놓고, 재현을 통과한 손이 덜어냄을 거쳐 표현에 이르는 과정을 묻는다.
사례 A유화로 쓴 사의(寫意) — 재현·표현·매체 번역
1풀이 없는 장
『예술과 풍토』(1988)에 「들라크르와와 노자」라는 짧은 장이 있다.1
앞에는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1798~1863)의 말이 있다. 그는 강한 색채와 움직임이 있는 그림으로 이름났다. 그의 말은 이렇다. 모델은 상상의 눈으로 볼 때만큼 생생하지 않다. 자연은 대단히 강력해서, 붓을 잡고 그것을 그리려 하면 구상이 이미 깨지고 만다.
이어서 중국 고대의 사상가로 『도덕경』의 저자라고 전해지는 노자의 말이 있다. "도(道)를 도라고 부르고자 할 때는 이미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그 뒤에 풀이는 없다.
제6장에서 본 반복으로 그가 무엇을 붙잡으려 했는지, 실마리는 이 짧은 장에 있는 듯하다. 그는 서양의 화가와 동양의 옛 사상가를 왜 한곳에 두었을까.
2'사의'의 번역: 동서 이분법을 넘어
형사(形似)와 사의(寫意)의 구분은 동아시아 회화론에서 오랜 계보를 갖지만, 이를 '서양=재현, 동양=표현'이라는 고정된 이분법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2 중요한 것은 변시지 자신이 『예술과 풍토』에서 이 대립을 어떻게 사유했고, 실제 작업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이다.
변시지는 「재현과 표현」에서 서양의 고전적 예술 이념과 동양 회화의 전통을 대조하면서, 동양화가 정확한 묘사로부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대상의 뜻에 접근한다고 썼다.3 이 진술은 동서 미술 전체에 대한 객관적 정의라기보다, 1980년대의 그가 자신의 회화적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역사적 언어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그 언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유화로 쓴 사의'라는 분석적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사의는 동양의 본질을 뜻하지 않는다. 정확한 재현 능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습득한 재현의 기술을 압축·생략·선의 리듬으로 재배치하는 작업 방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핵심은 동서의 종합이라는 선언보다 매체 번역에 있다. 먹선의 시간성과 유화의 중첩 가능한 물질성, 한 번의 획과 반복되는 덧칠이 서로 다른 시간 구조를 지니며, 변시지는 그 차이를 자기 작업 안에서 조정했다.
3색을 버리는 데서 서는 선
1981년 8월의 한 신문 기사는 그가 수묵화를 처음 선보인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동양화의 요소를 받아들인 이 작업을 '다시 유화로 돌아갈 경우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되는지를 시험하는 작업'이라고 했다.4
그의 작가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선의 성립은 색을 버리는 데 있다." 선이 종이 위를 지날 때는 종이를 누르는 무게가 있다. 그 무게가 선의 가장 중심이 되는 성질이고, 색에는 없다고 적었다. 동양화의 화면은 형체로는 줄어들지만 '속에 포함하는 의미는 크다'고도 적었다. 같은 노트에는 선을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가능태', 색을 다 드러난 '완성태'로 나누어 적은 쪽도 있다.5
제주 시기의 화면에서도 이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색은 마른 풀잎색으로 모이고, 형상은 검은 선으로 선다. 네비스는 이 검은 선과 바탕색의 대비가 한지에 먹으로 그리는 동양화의 기법에 뿌리를 둔다고 보았다.6
그러나 캔버스는 한지가 아니다. 그의 말로는, 동양화는 붓을 든 그 자리에서 마무리되지만 유화는 칠한 것이 어느 정도 마른 뒤 며칠에 걸쳐 다시 붓을 들어야 한다.7 동양화에서 '차차 불필요한 것을 지워 나가는' 일은 오랜 수련을 거쳐 한 번의 붓에 모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유화에서는 그 일이 며칠에 걸쳐 다시 붓을 드는 시간으로 나뉘었다고 읽을 수 있다.
4붓과 말이 닿지 못하는 곳
붓과 먹은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소학교 서도 시간에 쓴 글씨는 늘 교실에 붙었다.8 오사카미술학교 시절에는 동양화실에 들어가 종이 한 장을 얻어 '장난삼아' 그려 보기도 했다.9 뒤에 동양화의 전통이 깊은 광주에서 수묵화전을 제안받았을 때는, 서양화가가 '감히 어떻게' 하나 싶었다고 했다.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보자며 전시를 열었다.10
다시 그 장의 두 사람으로 돌아간다. 그는 같은 책에서 들라크루아를 '근대회화에서 색채에 대해 온 생애를 걸었던' 사람이라 불렀다.11 그런데 그 장에 옮긴 것은 색에 관한 말이 아니다. 자연 앞에서 붓을 들면 구상이 깨진다는 말이다.
노자의 말은 흔히 이렇게 읽힌다. 말로 부를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붙이면, 이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은 붓에서, 한 사람은 말에서 같은 일을 보았다고 읽을 수 있다. 붙잡으려 하면 달아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그가 지어낸 풍경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상상이나 공상으로 그린 그림에는 리얼리티, 곧 현실감이 없고, 현실감이 없으면 호소력이 없다고 했다. 본 것은 '현장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 스타일로 옮겨진다고 했다.12
5재현에서 표현으로가 아니라, 재현을 통과한 표현으로
변시지의 제주 회화는 재현을 폐기한 뒤 표현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인물의 구조, 원근, 빛, 색을 배운 손이 있었기 때문에 몇 개의 선으로 몸을 줄이고, 넓은 색면 안에 작은 배 하나를 남길 수 있었다.
따라서 '사의'는 사실성과 반대되는 범주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본 것,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것을 덜어내어 관계의 핵심을 남기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작품에 가깝다.
노트에는 덜어냄을 나이와 이어 쓴 쪽도 있다(노트2, 이미지 Image_20240121_0011·0012). 노경(老境)의 아름다움은 젊음을 바탕으로 하되 기욕(嗜慾)을 지우고 생기는 총명 위에 서며, 끝은 적막의 경지라고 적었다. 이 쪽도 화가 자신의 글인지 읽은 글의 정리인지는 가려지지 않는다. 다만 덜어냄을 젊음의 폐기가 아니라 젊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는 말이다. 위에서 본 '재현을 통과한 표현'과 같은 쪽을 향한다.
이때 검은 선은 동양화의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유화라는 매체 안에서 새로 기능한다. 선은 윤곽과 제스처, 무게와 방향, 몸과 풍토를 동시에 연결한다.
변시지의 제주 시기 회화는 '동양과 서양의 융합'이라는 익숙한 문구보다, 서로 다른 회화 전통과 매체 시간을 한 사람의 작업 과정 속에서 번역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사례 A는 변시지의 사의가 재현을 버린 결과가 아니라,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것을 덜어내어 관계의 핵심을 남기는 과정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덜어낸 뒤에는 무엇이, 얼마나 남는가. 사례 B는 2006년의 〈점 하나〉에서 이 물음을 잇는다.
사례 B덜어냄의 논리
〈점 하나〉와 최소 형식
1〈점 하나〉
2006년의 그림 〈점 하나〉는 제목부터 무엇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를 묻는다.13
화면은 온통 밝은 노란색이다. 위에서 5분의 1쯤 되는 높이에 가는 검은 선 하나가 가로로 지나간다. 자로 댄 듯 곧지 않고, 손으로 그은 대로 조금 흔들린다. 그 선 바로 아래, 왼쪽으로 치우친 자리에 작은 배 한 척이 있다. 돛대 하나가 서고 사람 하나가 탄 듯한, 점에 가까운 크기다. 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선 위의 하늘도, 선 아래의 넓은 바다도 같은 색으로 비어 있다.
화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점 하나로 제주를 표현하고 싶다."14 제목은 이 말과 함께 읽힌다. 후기 그림들이 갈수록 적게 남긴 것과 함께 보면, 이 제목은 적은 것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변시지의 여러 후기 그림은 적게 남긴다. 그런데도 화면은 비어 보이지 않는다. 이 사례는 그 까닭을 묻는다.
2무엇이 줄었나
변시지 자신의 그림 안에서 견주면 이렇다. 제4장에서 보았듯 제주에 온 첫 무렵의 그림에는 밝고 다양한 색이 있었다. 제주 시기의 여러 그림에서 색은 밝은 마른 풀잎색과 검은색, 두 극으로 모인다. 제9장에서 볼 먼 배도 한 척이다. 〈점 하나〉는 제목부터 하나를 말한다.
여러 후기 그림에서 사물은 적어지고, 색은 줄고, 빈 곳은 넓어진다. 이 책은 이것을 '덜어냄'이라 부른다.
3남은 것이 하는 일
덜어낸 자리에서 남은 것들은 더 많은 일을 떠맡는다.
제9장부터 제11장까지 살필 것들이 그렇다. 미리 말하면 배 한 척이 거리를, 한 가지 색조가 묶음을, 몇 줄의 검은 선이 자세를, 넓은 빈 곳이 밝음을 맡는다.
이렇게 보면 덜어냄은 빼기만이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이 살피는 그림들에서는, 적게 남길수록 남은 것이 더 많은 일을 한다.
사물이 적어지면 빈 곳이 커진다. 빈 곳이 커지면 마른 풀잎색의 면이 넓어진다. 그 면이 넓어지면 풍토가 형상 없이 드러나는 자리도 넓어진다.
4반복과 하나
김환기의 점화처럼 한국 현대미술에서 '점'은 반복과 밀도를 조직하는 단위로 사용되기도 했다.15 그러나 〈점 하나〉의 핵심은 점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만 남겨 둘레의 빈 곳을 확대하는 데 있다.
5덜어냄과 풍토
덜어냄은 가난이 아니다. 남은 것에 일을 모으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 이것은 중요하다. 풍토는 많은 사물을 그려서 드러나지 않는다. 사물을 줄이고, 그 둘레에 마른 풀잎색의 빈 곳을 넓힐 때 오히려 넓게 드러난다.
〈점 하나〉에서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노란 화면은 바다로 읽힌다. 이 사례는 덜어냄이 남은 것에 일을 모으고 풍토를 더 넓게 드러내는 방식임을 확인했다.
두 사례는 변시지의 표현이 재현의 훈련을 버린 자리가 아니라, 그 훈련을 통과해 덜어낸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함께 보여 준다. 이것이 논증 III의 잠정 결론이다. 재현은 폐기되지 않고 반복(제6장)과 매체 번역, 덜어냄을 거쳐 표현으로 옮겨 간다. 이렇게 길러진 눈과 손이 제주의 풍토와 만나 어떤 시선을 얻었는지는 논증 IV에서 다루며, 그 첫 장인 제8장은 〈흔들리는 수평선〉(2005)의 제목에서 풍경과 풍토의 차이를 묻는다.
형상은 덜어냈다. 풍토는 덜어내지 않았다.
주와 출처
-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들라크르와와 노자」. 책의 표기는 '들라크르와'. 노자의 말은 『도덕경』 1장 첫 구절. 들라크루아의 말이 실린 원전(일기·편지·강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 2022년 재간본(퍼플)에는 이 장에 화가의 수묵화(2000년경)가 함께 실려 있다. 육필 수첩 원고 No.82~83(이미지 img20240209_21282952·21293231, 판독 중)에 이 말이 옮겨 적혀 있다. 「모델은 여러분의 상상의 눈을 가지고 보는 때와 같이 생생한 것은 아닙니다... 구상[력?]을 깨지고 그것으로 인해 일련의 아름다운 습작을 얻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변분[?]이 없는 작품을 만들고 말 것이다」. 본문의 요약은 이 끝부분을 줄였다. 이 쪽은 「形態」 절 안에 있어, 책의 장 「들라크르와와 노자」와 같은 글인지는 대조가 필요하다. 들라크루아의 원전은 아직 찾지 못했다.
- ↑ 형사와 사의의 구분은 홍성후의 풀이를 따름. 그는 화가의 작가노트가 "외형을 중시하는 '형사(形似)'가 아닌 내재된 정신과 의취(意趣)를 표현하는 '사의'"에 주목한 것이라 적었다. 홍성후(명지대학교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경계를 넘어서: 변시지의 삶과 예술」, 「예술과풍토」 파일 수록.
- ↑ 『예술과 풍토』, 「재현과 표현」. 육필 수첩 원고 No.58에 「재현과 표현 (6)」이라는 제목이 있고, No.59(이미지 img20240209_21040872)에 「形似」, 神韻, 「氣韻生動」, 여백의 「一枝의 竹 속에 선 우주」가 적혀 있다(판독 하).
- ↑ 홍성후, 같은 글. 김광협, 「파리서 자리 굳힌 백영수 그림 60여 점 갖고 와 국내 전시회. 극세필 화풍의 변시지 제주에서 활동, 수묵화 처음 선보여」, 『동아일보』(1981. 8. 27)를 인용.
- ↑ 변시지, 「작가노트」, 『바람의 길: 변시지』(누보, 2020), 238쪽. 홍성후, 같은 글에서 재인용. 육필 노트(노트2, 이미지 Image_20240121_0003·0004)에 같은 말이 있다. 「線의 成立은 色을 버리는데 있었다」, 「東洋의 畵面이 縮小하는데 形体로서는 縮小하고 있어 그러나 속에 包含하는 것이 크다」, 「色과 線을 比較하면 線은 可能態이다. 色은 完成態이다」(판독 중). 다만 이 쪽이 화가 자신의 구상인지 읽은 글의 정리인지는 아직 가리지 못했다.
-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영어 원문: "The scale of many of Byun's paintings and the contrast between dark and black lines and the yellow brown, amber, and gold backgrounds are based on the traditional oriental technique of drawing with black ink on Hanji, a type of Korean paper."
-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6차 구술(2005년 1월 19일), 275~276쪽. 제7차 구술(2005년 4월 1일) 300~301쪽에도 같은 말이 있다.
- ↑ 같은 채록문 제1차 구술(2004년 12월 3일, 기당미술관), 30쪽. 서도는 붓글씨.
- ↑ 같은 채록문 제2차 구술(2004년 12월 4일), 66쪽. 전쟁 말기 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드물던 때의 일이다. 채록자가 "수묵도 좀 하시고..." 하고 묻자 "그런 것도 해보고"라고 답했다.
- ↑ 같은 채록문 제6차 구술, 269쪽.
- ↑ 『예술과 풍토』, 「색채에의 도전과 실험」. 같은 책 「브라크의 반구」에는 "들라크르와는 자연 그대로를 구도로 잡지는 않았다"는 문장도 있다.
-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7차 구술, 299~300쪽. 채록문에는 '스타이루'로 적혀 있다.
- ↑ 〈점 하나〉(2006).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26)으로 확인.
- ↑ 화가가 생전에 한 말이다. 저자(아들)가 직접 들었다(저자 확인, 2026-09-29). 글로 남은 출처는 찾지 못했다. 「그림의 언어」 117쪽은 〈제주도〉(1976)에 '점 하나로 그리는 제주의 원형'이라는 부제를 붙였다(편자의 글).
- ↑ 김환기(1913~1974)는 1963년부터 세상을 떠난 1974년까지 뉴욕에서 살며 작업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제목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에서 왔다. 1970년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