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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II/제6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6장 · 10 / 34

반복과 차이

논증 III · 재현은 반복과 덜어냄을 통과해 표현으로 이동한다

〈이어도〉 연작과 기억의 형식

변시지, 〈이어도〉, 1987
도판 7. 변시지, 〈이어도〉, 1987. 작품 100 · FŪDO 064 작품 보기 →
변시지, 〈이어도〉, 1980
도판 8. 변시지, 〈이어도〉, 1980. 작품 100 · FŪDO 063 작품 보기 →

1다시 온 까마귀

〈이어도〉(1987)에는 빈 배가 해안에 닿아 있고, 까마귀 한 마리가 그 곁에 내려앉아 있다.1 배는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작고 검게 그려졌고, 까마귀는 그 바로 곁에 서 있다. 일곱 해 앞의 〈이어도〉(1980)에도 빈 배와 그 곁의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같은 제목, 같은 짝이다. 그러나 같은 그림은 아니다. 〈이어도〉라는 제목만 해도 1977년부터 2005년까지 여러 점이 있다.2

그는 왜 같은 것을 거듭 그렸을까. 거듭 그리는 동안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2경외와 형식: 반복은 동일성의 재생산이 아니다

변시지는 바다를 그릴 때마다 깊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다에 대한 경외는 변하지 않지만, 그림은 계절과 하루의 때, 공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3 이 말에서 반복은 같은 이미지를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태도와 달라지는 형식 사이의 긴장을 지속하는 작업으로 읽을 수 있다.

배·까마귀·말·집은 해와 작품에 따라 크기와 위치, 거리와 색을 바꾸며 다시 나타난다. 이 반복은 제주를 고정된 상징으로 만들기보다, 기억과 작업의 관계를 매번 다시 구성하는 일로 볼 수 있다.

3같은 모티프, 달라지는 형식

1980년과 1987년의 두 〈이어도〉를 나란히 놓으면 반복은 차이를 생산한다. 빈 배와 까마귀라는 관계는 유지되지만, 배의 크기와 위치, 까마귀와의 거리, 바탕색, 붓질의 밀도, 여백의 비율은 달라진다.

따라서 연작을 읽는 단위는 개별 사물보다 관계의 변화다. 같은 모티프가 어떤 거리로 놓이고, 얼마나 작아지며, 어떤 색면 속에서 고립되거나 결합되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이 차이는 기억의 작동과도 관련된다. 그는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았다. 사진만 보고 그리면 상상력이 없어진다고 했고, 눈으로 보고 '머리에서 익힌' 것이 '사진보다도 정확'하다고 했다.4 기억을 거친 모티프는 같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매번 다시 구성된 관계가 된다. 그래서 그의 바다는 늘 같으면서 그릴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보면 반복은 그가 장소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소와의 관계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4고향의 산, 고향의 바다

프랑스의 화가 세잔(1839~1906)은 고향인 남부의 도시 엑상프로방스를 굽어보는 생트빅투아르산을 거듭 그렸다. 1878년의 편지에서 그는 이 산을 '아름다운 모티프'라고 불렀다. 그 무렵부터 세상을 떠난 1906년까지, 유화와 수채화를 합쳐 여든 점쯤이다. 말년에는 엑상프로방스 북쪽 레 로브의 작업실 둘레에서 산을 바라보며 그렸다.5 변시지도 『예술과 풍토』에서 세잔을 두고 적었다. 세잔이 '자연에의 끊임없는 관찰'로 하나의 원리를 찾아냈다는 것이다.6

두 사람은 늦은 나이까지 고향의 풍경을 되풀이해 그렸다. 다른 점도 있다. 세잔은 산을 마주하고 그렸다. 변시지는 바다를 보고 돌아와 집에서 그렸다.

세잔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화가로서 자연 앞에서 더 밝게 보게 되지만, 느낀 것을 이루어 내기는 언제나 몹시 어렵다고.7 변시지도 자기 작품에 칠팔십 퍼센트쯤 만족한다고 했다. 온전한 만족은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8

5이미 지나간 붓

거듭 그리기는 베끼기가 아니다. 그는 책에서 모방은 '베끼기가 아니라 창조의 정신'이라고 썼다.9 네비스에 따르면 그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거듭 새기면, 기억에 남는 그림을 넘어 새로운 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었다.10

말년에 그는 두 점을 함께 시작하기도 하고, 오래 생각한 뒤에 붓을 든다고 했다. 좋은 것이 우연히 나와도 더 좋게 하려고 손을 대면 그것이 사라지고, 손대기 전으로는 '돌려놓을 수가 없어. 이미 지나가거든.' 그래서 신중하게, '하나의 완성'을 시도한다고 했다.11

한 번 지나간 붓은 되돌릴 수 없다. 되돌리는 대신, 그는 다시 그렸다.

두 〈이어도〉 사이에서는 배의 크기와, 까마귀와 배 사이의 거리가 달라졌다. 이 장은 그의 반복이 변하지 않는 태도 위에서 형식을 거듭 고쳐 가는 일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거듭 그려서 그가 붙잡으려 한 것은 바다의 겉모습이었을까, 그 안의 뜻이었을까. 다음 장은 이 물음을 '사의(寫意)'라는 말로 받고, 그 뜻을 위해 화면에서 무엇을 덜어냈는지를 〈점 하나〉(2006)에서 함께 본다.

바다 앞의 자세는 같았다. 그림은 한 번도 같지 않았다.

주와 출처

  1. ↑ 〈이어도〉(1980)의 빈 배와 그 곁의 까마귀 한 마리는 저자 확인. 〈이어도〉(1987)는 「그림의 언어」(347쪽)의 설명을 따름. 두 그림의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63·064)으로 확인.
  2. ↑ 「그림의 언어」 수록 목록 기준 1977, 1978, 1980, 1987, 1991(두 점), 2005.
  3.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영어 원문: "Whenever I paint the sea, I think deeply about it. Thinking deeply about the sea allows me to paint it again and again. My reverence for the sea remains constant, but my images vary based on differences in seasons, times of day" — 원문의 따옴표는 여기서 닫히고 "and atmospheric variations"가 이어진다.
  4.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7차 구술(2005년 4월 1일), 297~299쪽.
  5. ↑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엑상프로방스에서 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1878년 4월 편지의 '아름다운 모티프(beau motif)', 생트빅투아르산 연작의 수량과 시기, 레 로브 작업실(1902년부터)은 위키백과 「Mont Sainte-Victoire (Cézanne)」의 정리를 따름.
  6. ↑ 『예술과 풍토』, 「세잔느와 형태의 단순화」.
  7. ↑ 세잔이 아들 폴에게 보낸 1906년 9월의 편지. 영어 번역: "as a painter I am becoming more clairvoyant to nature, but that it is always very difficult for me to realize my feelings."
  8. ↑ 네비스, 같은 글. 영어 원문: "he is 70%-80% pleased... the achievement of total satisfaction is impossible."
  9. ↑ 『예술과 풍토』, 「모방의 본질」.
  10. ↑ 네비스, 같은 글. 영어 원문: "Imprinting the relationships between humans and nature, he believes, can result in a new consciousness, not merely a memorable image."
  11.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7차 구술, 301~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