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II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논증 III · 9 / 34
재현은 반복과 덜어냄을 통과해 표현으로 이동한다
반복·압축·매체 번역
변시지의 제주 시기 회화를 "재현에서 표현으로의 전환"이라는 단선적 도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주제를 거듭 그리는 반복, 인물화의 해부학과 비원의 세밀한 묘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덜어냄을 가능하게 한 바탕이었다. 이 논증은 사의(寫意)를 동서양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라 재현을 통과한 압축과 매체 번역의 문제로 다시 정의한다.
논증의 얼개
- 주장
- 제주 시기의 표현성은 재현 훈련을 폐기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정확한 재현 능력을 통과한 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형성되었다.
- 작품 증거
- 두 〈이어도〉(1980·1987)의 반복과 차이, 〈K씨의 상〉의 포즈와 비원 그림의 세밀묘사, 뒷날의 〈점 하나〉(2006)와 검은 선, 1981년의 수묵 실험.
- 1차 자료
- "인물은 속임수가 없다", 캔버스를 인물에 맞춰 잘랐다는 구술,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도쿄 시절의 결론, "선의 성립은 색을 버리는 데 있다"는 작가노트, 『예술과 풍토』의 「들라크르와와 노자」.
- 반례
- 〈난무〉(1997)처럼 여러 형상과 운동이 화면을 적극적으로 채우는 작품도 있다. 덜어냄은 연대가 흐를수록 한 방향으로 강해지는 법칙이 아니라 특정 작품군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선택이다. 또한 노인·말·집·배 같은 형상은 끝까지 남으므로 추상으로의 직선적 진화로 설명할 수 없다.
- 자료 한계
- '사의'는 작가의 모든 유화를 규정하는 자칭 개념이 아니라 이 책의 분석어다. 들라크루아 인용의 원전과 1981년 수묵화전 자료의 서지를 확정해야 한다.
- 기존 미술사와의 차이
- '서양=재현, 동양=표현'이라는 본질주의적 이분법 대신, 작가가 자신의 매체와 교육 경험을 설명하려고 동서의 개념을 골라 번역한 과정으로 본다.
- 잠정 결론
- 변시지의 덜어냄은 재현의 반대가 아니라 재현이 압축된 상태이며, 표현은 훈련된 눈과 손이 남긴 것 위에서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