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I/제5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5장 · 8 / 34

이어진 길

논증 II · 귀향은 원점 회귀가 아니라 재학습이다

〈다시 이어진 길〉과 이동의 회화학

변시지, 〈다시 이어진 길〉, 1998
도판 6. 변시지, 〈다시 이어진 길〉, 1998. 작품 100 · FŪDO 034 작품 보기 →

1절벽에서 집으로

〈다시 이어진 길〉(1998)의 언덕 위로 길이 나 있다. 「그림의 언어」의 설명을 따르면, 길은 처음에 절벽 쪽으로 가다가 나중에는 집 쪽으로 향한다.1 흰 길은 화면 아래에서 올라와 오른쪽 벼랑 쪽으로 굽었다가, 다시 왼쪽으로 꺾여 언덕 위의 집으로 간다. 벼랑 끝은 검은 선 하나로 바다와 나뉜다. 길 위에는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이 있고, 화면 왼쪽 아래에는 말 한 마리가 서 있다.

제목에는 '다시'가 있다. 끊겼던 것이 이어졌다는 말이다. 무엇이 끊겼고, 무엇이 이어졌을까.

머문 사람이 그린 길이다. 그 길을 읽기 전에, 그의 삶에 난 길부터 따라가 본다.

2떠난 날의 바다

떠남은 일찍 왔다. 서귀포 서홍동 집 마루에 서면 앞바다가 보였다. 그 무렵에는 과수원도 바람막이 나무도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바다에 일본으로 가는 큰 배가 와 섰다. 바다가 얕아 배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작은 배로 건너가, 위에서 잡아 주는 손에 끌려 올랐다. 누군가의 흰 고무신이 바다에 떨어졌다. 아버지가 그와 동생과 누나를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부산에 닿자 냄새가 달랐다. 그는 그것을 '문명의 냄새'로 기억했다.2

그 뒤 오사카와 도쿄와 서울을 거쳐, 그는 제주로 돌아왔다. 『예술과 풍토』의 머리말에 그는 이 길을 적었다. "여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시작했다. 청년기를 그곳에서, 장년기 이후를 서울과 제주에서 보낸 날들이 '기나긴 모색과 출발의 기간'이었다고 했다.3

눈여겨볼 말은 '출발'이다. 그는 제주로 돌아온 뒤의 시간까지 출발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떠남과 돌아옴은 따로 끊긴 두 일이 아니었다. 한 길 위에 있었다.

3걸어서 혼자

그의 그림 속 길 위에는 사람이 자주 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한 걸음씩 땅을 디디며, 조금 기운 채 걷는다. 〈다시 이어진 길〉의 사람도 그렇다. 지팡이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집 쪽으로 오른다. 네비스는 그 노인이 유럽의 기념물을 그린 그림에도 나온다고 적었다.4

그 자신도 걷는 사람이었다. 1981년, 그는 처음 유럽에 갔다.5 일행과 함께였지만, 아침을 먹고 아홉 시쯤 나서면 하루 종일 걸었다. 그릴 데가 있으면 거기서 그렸다. 불어를 할 줄 알아 '걸어서 혼자'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길을 물어 가며 '한 발짝도 헛된 걸음을 안 했다'고 기억했다.6

제주에서도 그는 걸었다. 주변이 변해 갈 때마다 기억 속 어린 날의 고향을 '혼자 찾아' 간다고 적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리다 보니, 그것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되었다고 했다.7

머문 사람의 그림에 길 위의 사람이 많은 까닭 하나가 여기 있다. 그에게 머무는 일은 한곳을 오래 걷는 일이기도 했다.

4소를 찾는 그림

그는 이 그림보다 한 해 앞서 〈심우도〉(1997)를 그렸다.8 심우도는 '소를 찾는 그림'이다. 선불교에서, 사람의 본성을 소에 빗대어 그것을 찾아 길들이고 돌아오는 과정을 열 장면으로 그렸다. 여섯째 장면에서 사람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열째,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은 바랑과 지팡이를 들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나온다.9

그가 이 제목에 어떤 뜻을 두었는지 전하는 말은 찾지 못했다. 다만 이 옛 그림에서도 돌아옴은 끝이 아니다. 변시지의 길도 그랬다. 돌아온 섬에서 그는 다시 걸었고, 걸으며 그렸다.

5이어진 길

〈다시 이어진 길〉의 제목으로 돌아가자. 끊겼던 것은 어린 날 떠난 섬과 쉰 살을 앞두고 돌아온 섬 사이의 긴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 시간은 그림 안에서 이어졌다. 그는 캔버스를 마주하는 일을 두고 '내 존재를 재확인하는 과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적었다.10 다시 확인하는 일은 다시 잇는 일이기도 하다.

길은 굽되 끊기지 않는 선이다. 끊긴 듯 보여도 다시 이어진다. 떠남과 돌아옴을 하나로 잇는 것도 이 선이다.

〈다시 이어진 길〉의 흰 길은 벼랑 쪽으로 가다가 집 쪽으로 꺾인다. 이 장은 그에게 떠남과 돌아옴, 머묾과 걷기가 한 길 위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제4장과 함께 보면, 그의 귀향은 떠난 자리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머물고 걸으며 고향을 다시 배우는 일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논증 II의 잠정 결론이다. 길은 한 번만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 시기에도 〈길〉이라는 그림이 있고,11 제주에서는 여러 해에 걸쳐 지팡이 짚은 노인이 길 위에 섰다. 논증 III을 여는 다음 장은 〈이어도〉 연작을 통해, 같은 것을 거듭 그리는 동안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돌아옴도 길이었다.

주와 출처

  1. ↑ 〈다시 이어진 길〉(1998). 화면 설명은 「그림의 언어」(535쪽)를 따름.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34)으로 확인.
  2.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1차 구술(2004년 12월 3일, 기당미술관), 25~26쪽.
  3.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책 머리에」.
  4.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영어 원문: "the old man who walks with a cane in many of his paintings, including his paintings of European monuments".
  5.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2차 구술(2004년 12월 4일), 105쪽. 같은 해 10월 로마의 아스트롤라비오(Astrolabio) 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었다(채록문 약력). 『우성 변시지 유럽기행화집』(삼화출판사, 1982)이 있다.
  6. ↑ 같은 채록문 제6차 구술(2005년 1월 19일), 272~273쪽.
  7. ↑ 『예술과 풍토』, 「제주에 산다」 가운데 '제주의 향토 예술'.
  8. ↑ 〈심우도〉(1997). 제목과 연도는 「그림의 언어」(533쪽)를 따름.
  9. ↑ 열 장면은 심우(尋牛)·견적(見跡)·견우(見牛)·득우(得牛)·목우(牧牛)·기우귀가(騎牛歸家)·망우존인(忘牛存人)·인우구망(人牛俱忘)·반본환원(返本還源)·입전수수(入廛垂手). 송나라 보명의 목우도와 곽암의 십우도에서 비롯하며, 한국은 곽암의 것을 주로 따른다. 「[사찰벽화 6] 도를 찾아 나서는 강진 백련사 '십우도'」(우리문화신문), 「돋보기로 들여다 본 사찰 ⑬ 심우도」(금강신문) 참고.
  10. ↑ 『예술과 풍토』, 「제주에 산다」 가운데 '제주에 산다'.
  11. ↑ 「그림의 언어」는 서울 시기의 〈길〉 두 점(1960, 1961)을 싣는다. 홍성후의 글은 평론가 이구열의 평을 빌려 〈길〉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