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I/제4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4장 · 7 / 34
귀향과 재학습
머묾과 다시 보기
논증 II · 귀향은 원점 회귀가 아니라 재학습이다
1975년 태어난 섬 제주로 내려온 그는 그 뒤 서른여덟 해를 그곳에서 살았다. 이 장은 그 귀향을 두 그림으로 본다. 사례 A는 제주에 자리 잡은 지 여러 해 뒤의 〈빈 집〉(1987)에서, 떠나지 않기로 한 날들이 그림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묻는다. 사례 B는 돌아온 직후의 〈제주〉(1976)로 거슬러 가, 돌아온 사람의 눈이 같은 섬을 어떻게 다시 보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두 사례는 함께, 귀향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는지 다시 배우는 일이었는지를 묻는다.
사례 A제주가 방법이 될 때 — 머묾·거주·〈빈 집〉
1언덕 위의 집
〈빈 집〉(1987)에는 집이 한 채 있다. 화면 왼쪽, 언덕 위다. 초가다. 돌을 쌓은 벽에 지붕을 얹었고, 문에는 문살이 있다. 방문은 닫혀 있다. 집 오른쪽 아래 비탈에는 검은 바위가 누워 있다. 손 모양이다. 손가락이 다섯이다.1 집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위로 까마귀 두 마리가 난다. 수평선 위에는 해와 배 한 척이 있다. 화면은 온통 밝은 노랑이다.
제목은 집이 비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은 닫혀 있다. 빈 집의 문은 누가 닫았을까.
2열하루가 한 해가 되기까지
1975년,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에는 미학과 예술론을 가르칠 사람이 없었다. 와 달라는 청에 그는 처음에 못 가겠다고 했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그러자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만 와서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 왔다.2
그는 열하루만 있다 갈 생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정이 들었다. 주위에서는 눌러앉으라고 했다. 그는 한 학기만 있겠다고 했고, 한 학기가 지나자 한 해를 말했다.2 그 한 해가 서른여덟 해가 되었다.
가족은 서울에 있었다. 가족이 제주에 오고 그가 서울에 가기도 했지만, 함께 지낸 날은 대개 특별한 행사나 기념일이었다고 한다.3 그는 마음의 가장 큰 평온을 주는 것으로 사회의 안정,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손주들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제주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4
이 장은 이것을 '머묾'이라 부른다. 떠나지 않기로 한 날들이 쌓여 머묾이 된다.
3닫힌 문
그림으로 돌아가자. 이 화면에서 눈이 멈추는 곳은 두 군데다. 손 모양의 바위와 닫힌 문이다.
손은 집 아래 비탈에 있다. 검은 바위는 집의 오른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누워 있다. 끝이 몇 갈래로 갈라져, 손가락을 편 손처럼 보인다. 그는 바닷가의 '추상적인 암초'를 여러 방향에서 살펴보면 '하나의 환상'이며 '상징'이 된다고 쓴 적이 있다. 그 굴곡은 '진실된 무언의 대화', 곧 말 없는 대화를 맛보게 한다고도 했다.5 네비스는 그가 같은 소재를 거듭 그리며, 자주 자기 손을 그린다고 적었다.6 이 바위를 화가의 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그림에서 손은 집 바로 아래, 집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
문은 안을 보여 주지 않는다. 문이 열려 있었다면, 사람은 떠나고 바람만 드나드는 집으로 읽혔을 것이다. 닫힌 문은 달리 읽힌다. 누군가 문을 닫고 떠났거나, 누군가 아직 이 집을 돌보고 있다. 그림은 그중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4머무는 일, 아끼는 일
거주를 단순한 점유가 아니라 머무름과 아낌으로 이해한 철학적 논의는, 집이 기후와 삶의 조건을 헤아려 지속되는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7 하이데거가 예로 든 슈바르츠발트 농가도 자연을 정복하는 장치가 아니라 폭풍과 생의 주기를 헤아린 거주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변시지의 글에도 이와 겹쳐 읽을 만한 대목이 있다. 그는 때로 '고향이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묻는다고 적었다. 제주의 옛날과 오늘을 견주어 보며, '제주는 제주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도 했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제주다움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썼다.8 제주를 제 모습대로 두고 보려는 마음이다.
다른 점도 있다. 그의 머묾은 가족과 떨어진 머묾이었다. 그는 뒤에, 제주에서도 가족과 함께 편안한 생활을 했다면 '그런 그림을 버리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몸에 익은 비원의 방식을 두고 한 말이다. 그 방식을 내려놓고 제주의 그림을 처음 시작할 무렵을, 그는 어딘가 의지할 데가 없던 때로 기억했다.9
5방법이 된 섬
그는 비원의 색을 버린 뒤, 바닷가에 앉아서도 밤낮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10 머묾은 가만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는 일이었다.
제주에 온 지 열세 해가 지난 1988년 봄, 그는 제주 화실에서 『예술과 풍토』의 머리말을 썼다. "제주는 이제 나에게 있어 예술적 공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적 근거이자 방법이 된 셈이다."11 머묾이 한 일이라고 해도 좋겠다.
닫힌 문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버려진 집의 문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 아끼는 집의 문일 수 있다. 닿을 수 없게 된 집의 문일 수도 있다. 그림은 둘을 가르지 않는다.
이 사례에서 머묾은 가만히 있는 일이 아니라, 제주를 방법으로 삼아 그리는 일의 조건으로 드러났다.
제주가 '방법'이 되었다고 그가 쓴 것은 제주에 온 지 열세 해 뒤였다. 그 시간의 처음에, 돌아온 사람의 눈은 섬을 어떻게 보았는가. 사례 B는 〈빈 집〉보다 열한 해 앞선 〈제주〉(1976)로 거슬러 가 이 물음을 묻는다.
사례 B귀향의 시각성 — 풍경이 풍토가 되는 시간
1같은 섬, 다른 색
제주에 돌아온 이듬해에 그린 〈제주〉(1976)에서 산은 보랏빛이고 하늘에는 분홍빛이 돌며, 바다는 푸르다. 말도 푸르다.12 한 해 뒤의 〈서귀포〉(1977)에도 그때까지 쓰던 밝고 다양한 색이 아직 남아 있다. 뒷날 제주에서 그린 그림들의 절제된 색조와는 꽤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주에서 그린 그림들은 달라진다. 색의 가짓수는 줄고, 화면은 마른 풀잎색으로 모여 간다.
같은 화가가 같은 섬을 그렸다. 섬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2돌아온 사람의 눈
변시지는 1975년 서울에서 제주로 옮겨 왔다. 제주는 그가 태어난 섬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오사카로 건너간 뒤로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 떠났다 돌아온 사람에게 익숙했던 곳은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돌아온 사람의 눈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두 번의 눈
첫 번째 눈은 처음처럼 보는 눈이다. 돌아온 사람에게 섬은 반갑고 새롭다. 바다와 햇빛과 들판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서론의 구분으로 말하면, 이때의 제주는 아직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깝다. 〈제주〉와 〈서귀포〉의 밝은 색은 이 첫 번째 눈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 눈은 그 안에서 사는 눈이다. 해가 거듭되면 섬은 더 이상 새롭지만은 않다. 대신 바람과 햇볕이 몸에 쌓인다. 그림 속 여러 색은 점차 한 가지 색조로 모이고, 선은 휘고, 사람은 낮아진다. 바라보던 풍경이 몸에 들어온 풍토가 되었다고 읽을 수 있다.
달라진 것은 보는 자리다. 두 눈은 앞뒤로 이어져 있다.
4낯설게 하기, 그리고 그 뒤
시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는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귀향의 낯섦과 구조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13 다만 전자는 예술적 기법이고 후자는 삶의 사건이므로 둘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래 떠났다가 돌아온 제주가 이미 알고 있던 고향이면서 동시에 다시 보아야 할 장소가 되었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하다.
그에게 낯설게 보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움의 감각은 풍토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으로 바뀌어 갔다.
5풍토가 형식이 되기까지
변시지는 일본에서 근대 회화의 형식과 기법을 익혔다. 서울 시기를 거치며 자신의 회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제주에서 서른여덟 해를 살며 그림을 그렸다.
밖에서 익힌 회화의 방법과 안에서 살아 낸 시간이 한 화면에서 만났다. 그 만남 속에서 제주는 소재를 넘어 그림의 형식을 바꾸는 조건이 되었다. 익힌 것이 지워진 것은 아니다. 사람의 몸을 그리는 법과 그림을 단순하게 하는 생각은 그가 배운 도쿄에서 왔고, 그는 그것을 제주에서 다시 짰다. 그 계보는 제1장과 제2장에서 확인했다.
풍토가 그림의 형식이 된 것은 제주에 도착한 날부터가 아니었다. 낯선 고향을 다시 보고, 그곳에서 오래 살고, 바람과 햇볕이 몸에 쌓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화가 자신도 뒷날 구술에서, 제주에 몇 해를 살고서야 그곳의 풍토와 역사와 사람들의 의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14
제작 연도를 가리고 색만 견주어도 여러 색의 그림과 한 색으로 모인 그림은 갈린다. 이 사례는 그 사이의 시간이 '처음처럼 보는 눈'을 '그 안에서 사는 눈'으로 바꾸었음을 보여 준다.
두 사례는 같은 귀향의 두 면이다. 돌아온 사람의 눈은 섬을 처음처럼 보다가 그 안에서 사는 눈이 되었고, 떠나지 않기로 한 날들은 제주를 그림의 '방법'으로 바꾸었다. 이 점에서 그의 귀향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기보다 다시 배우는 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머문 사람의 그림에는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이 자주 나온다.15 다음 장은 〈다시 이어진 길〉(1998)을 따라, 한곳에 머문 사람이 왜 길 위의 사람을 그렸는지를 묻는다.
돌아온 사람은 두 번 본다. 한 번은 처음처럼, 한 번은 그 안에 살면서.
주와 출처
- ↑ 〈빈 집〉(1987). 화면의 사실(언덕 위의 집, 그 아래 비탈의 손 모양 바위, 손가락 다섯, 닫힌 방문)은 저자 확인(2026-09-30: "그림대로. 집은 언덕에 있어"). 「그림의 언어」는 제목을 〈빈집〉으로 적고, 바다를 바라보는 집과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 떠나가는 배를 말하며, 문은 "열려 있고"라고 적는다. 이 책은 저자 확인을 따른다.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62)으로 확인.
-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6차 구술(2005년 1월 19일), 257~258쪽. 제5차 구술(2005년 1월 18일) 200쪽에도 가족이 모두 서울에 있어 전임을 사양했다는 말이 있다.
- ↑ 홍성후(명지대학교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경계를 넘어서: 변시지의 삶과 예술」, 「예술과풍토」 파일 수록.
-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인용은 한국어 번역본. 영어 원문: "His greatest sources of tranquility are social stability and his wife, children and grandchildren. Periodically, they travel to Jeju and he visits Seoul, but he cannot imagine living anywhere but Jeju."
-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제주에 산다」 가운데 '환상의 섬, 상징의 바위'. 책의 표기는 '무언(無言)'.
- ↑ 네비스, 같은 글. 영어 원문: "Byun repeatedly paints the same subjects. Often he paints his own hands."
- ↑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짓기, 거주하기, 생각하기(Bauen Wohnen Denken)」, 1951년 다름슈타트 강연, 『강연과 논문(Vorträge und Aufsätze)』(1954) 수록. 본문은 다음 대목을 풀어 쓴 것이다. "das Bleiben, das Sich-Aufhalten", "Wunian heißt: zufrieden sein, zum Frieden gebracht, in ihm bleiben", "Der Grundzug des Wohnens ist dieses Schonen", "wenn wir etwas zum voraus in seinem Wesen belassen", 슈바르츠발트 농가("gegen die Stürme der langen Winternächte", "Kindbett und Totenbaum").
- ↑ 변시지, 『예술과 풍토』, 「제주에 산다」 가운데 '제주에 산다'.
-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7차 구술(2005년 4월 1일), 302쪽("어딘가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303쪽.
- ↑ 같은 채록문 제7차 구술, 304쪽.
- ↑ 변시지, 『예술과 풍토』, 「책 머리에」(1988년 봄, 제주 화실에서).
- ↑ 〈제주〉(1976). 화면은 byunshiji.org 작품 100의 도판(FŪDO 096)으로 확인.
- ↑ 빅토르 시클롭스키, 「기법으로서의 예술(Искусство как приём)」(1917).
-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제5차 구술(2005년 1월 18일, 기당미술관), 221쪽. "제주라는 어떤 풍토, 또는 또 역사적인 거, 또는 삶의 제주도민의 어떤 의지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거지 몇 년 동안 살게 되니까".
- ↑ 네비스, 같은 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이 유럽의 기념물을 그린 그림을 포함해 여러 그림에 나온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