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바람의 백년/Ⅷ 예술철학

Ⅷ 예술철학 · 99 / 100

제주에 산다

집 가까이, 바다 앞에

Living in Jeju

빈 집 / Empty House · 1987. 왼쪽의 작은 집과 기울어진 나무, 오른쪽 먼 배와 태양. / A small house and leaning tree at left, with a distant boat and sun to the right.
〈빈 집〉 · 1987FŪDO 062
이대로 가는 길 / Going This Way · 2006. 화면 오른쪽 아래 사람, 왼쪽 아래 말, 나무가 늘어선 능선과 작은 집, 위쪽 수평선 아래 먼 배. / A figure at lower right, a pony at lower left, a tree-lined ridge and a small house, with a distant boat below the upper horizon.
〈이대로 가는 길〉 · 2006FŪDO 054

주소를 적은 뒤

〈이대로 가는 길〉에서 사람과 말은 떨어져 있다.
사이에 넓은 땅이 있다.
능선에는 나무와 집이 있고 배는 더 멀다.

제주에 산다는 말 뒤에 날들이 온다.
날씨에 맞추어 몸을 두고 사람을 만난다.
익숙한 길이 달라진 것을 보기도 한다.

살았다고 저절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면서 처음 보는 것도 있다.
생활과 그림 사이를 눈과 손이 오간다.

없어지는 나뭇가지

변시지는 제주시와 서귀포의 화실을 오가며 나무를 보았다.
길을 넓히면서 사라진 굽은 가지들을 기억했다.
보던 길에 더는 볼 수 없는 것이 생겼다.

고향이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오래 산 사람도 다시 보아야 한다.
뒤늦게 온 사람도 그곳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빈 집〉의 낮은 지붕을 아낀다.
그렇다고 지금의 사람에게 그 집 그대로 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림을 지키는 일과 삶을 옛날에 붙잡아두는 일은 다르다.

지붕만의 일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거주를 건물 안에 머무는 일보다 넓게 물었다.
대지와 하늘, 신적인 것들과 유한한 인간을 함께 생각했다.
사물이 제 모습으로 있도록 보살피는 일도 거주에 두었다.

그 말을 그림 곁에 둔다.
그러나 바람을 곧 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집이 있다는 이유로 그 안의 삶이 안전하다고 하지도 않는다.

문 밖의 몸은 어디에 기댈까.
작은 지붕은 무엇을 막아줄까.
먼 수평선 앞에서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묻는다.

함께 맞는 추위

와쓰지의 풍토론에서 추위는 온도계의 숫자만이 아니다.
추운 우리는 옷을 입고 머물 곳을 찾는다.
몸이 느끼는 일에 함께 사는 방식도 들어 있다.

바람은 혼자 얼마나 잘 견디는지 묻는 시험만이 아니다.
낮은 지붕과 돌담, 가까이 선 몸들을 보게 한다.
무엇이 바람을 함께 막고 있는지 생각한다.

같은 바람을 맞아도 남기는 선은 다르다.
사람이 다르고 살아온 날이 다르다.
풍토를 읽으며 그 차이를 지우지는 않는다.

되풀이되는 자리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토르넬로에서 익숙한 리듬이 자리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그 둘레가 열려 다른 힘을 만나는 일도 함께 있다.
영토는 닫아 지키는 땅만은 아니다.

집과 나무, 사람과 말이 되풀이된다.
말은 사람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익숙한 것들을 다시 놓으며 다른 사이가 생긴다.

변시지는 마음의 풍경이 제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자신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머무는 사람의 눈이 먼 곳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돌아와 그리는 일

듀이는 하는 일과 겪는 일이 오가는 경험을 생각했다.
삶과 떨어진 기적만이 예술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를 살았다고 그 하루가 그대로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폭풍을 보고 돌아와 집에서 그렸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구도를 다시 생각했다.
바다와 그림 사이에 화가가 한 일이 있다.

풍토는 붓에 저절로 묻는 색이 아니다.
몸이 겪고 눈이 배운 것을 기억과 손이 다시 고른다.
재료가 허락하는 곳에서 한 화면이 생긴다.

남기되 붙잡지 않고

옛 집을 그렸다고 모든 변화를 막자는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지금 사는 사람이 바라는 삶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말과 새는 사람 곁에 있다.
그렇다고 사람의 이야기를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몸과 바라보는 방향을 남겨둔다.

오래 머물렀다고 좋은 관계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로 열었는지 본다.
집의 문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도 다시 묻는다.

익숙한 곳에서

생활에는 그림 밖의 일이 많다.
그림에는 생활 그대로가 아닌 선택이 있다.
그 사이를 두어도 둘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수평선을 다시 본다.
같은 집도 놓을 자리는 달라질 수 있다.
익숙한 곳에서 아직 모르는 사이를 찾는다.

능선에 나무들이 있다.
그 끝에 작은 집이 있다.
아래의 사람과 말은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