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예술철학 · 100 / 100
바람의 길
마지막 글에서, 다시 그림으로
The Road of the Wind
마지막이라는 이름
〈마지막 작품〉의 화면은 밝다.
위에는 작은 해와 먼 배가 있다.
아래 한쪽에 작은 말과 어두운 형상들이 남아 있다.
마지막 그림을 안다고 마지막 붓질을 본 것은 아니다.
언제 손이 멈췄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는 채로도 남은 선을 볼 수 있다.
책의 끝에 그림을 한 점 놓는다.
한 생애를 다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작은 형상을 한 번 더 본다.
처음 물었던 것
처음에는 바람을 물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느껴지는가.
나무와 집, 말과 사람의 몸을 보았다.
바람 때문이라고 알아도 볼 것은 남는다.
가지는 어디로 뻗는가.
집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묻다가 보이는 것에 돌아온다.
처음의 그림에 돌아온다.
전에 놓쳤던 틈이 눈에 걸린다.
뜻을 더 붙이지 않고도 보는 일이 달라질 수 있다.
백 년의 바깥과 안
변시지는 1926년에 태어나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2026년은 탄생 백주년이다.
그 백 년 안에는 그가 더는 그리지 못한 시간도 있다.
그 뒤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을 확인하고 글을 읽히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념의 다음 날에도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남는다.
그림은 저절로 남지 않았다.
누군가 보관하고 옮기고 살폈다.
영원하다는 말 아래 그 손들을 감추지 않는다.
마친 뒤에도
변시지는 신중하게 그리며 마무리와 완성을 기대한다고 했다.
더 손대다가 좋은 것을 잃는 일도 말했다.
붓을 멈출 자리를 찾고 있었다.
화가가 마친 뒤에도 보는 사람에게는 일이 남는다.
손의 끝과 눈의 끝은 같지 않다.
열려 있는 그림이 늘 미완성일 필요는 없다.
이 책도 마칠 수 있다.
문장을 고치고 마지막 면을 정한다.
그 면이 그림의 끝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붓
그의 붓은 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실을 지우지 않아도 그림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그 앞에서 새로 보기 때문이다.
작은 화면이 원화의 크기와 표면을 다 전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먼 사람을 그림 앞에 데려올 수 있다.
전하지 못한 것과 열어준 길을 함께 남긴다.
젊은 얼굴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
나무를 보고 글을 읽고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 사람이 있었다.
한 이름 안에 그 서로 다른 날들을 남겨둔다.
백 편을 읽은 눈
백 편은 백 개의 정답이 아니다.
같은 그림에 다른 물음을 건넨 흔적이다.
너무 많이 설명한 말은 그림 앞에서 다시 덜어낼 수 있다.
풍토를 알고 집과 몸의 사이를 다시 본다.
여백을 알고 먼 배까지의 거리를 느낀다.
그 말을 몰라도 그림 앞에 올 수 있다.
책을 덮고 문장을 잊어도 된다.
숙인 말의 머리 하나가 남을 수 있다.
다른 날 그 자세가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다른 그림의 배
〈마지막 작품〉의 배를 보고 다른 그림으로 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는 큰 절벽이 있다.
사람과 말은 오른쪽 아래에 있고, 배는 왼쪽 먼 물에 있다.
배를 죽음이나 구원으로 먼저 부르지 않는다.
그 작은 배를 보기까지 넓은 물을 지난다.
눈이 지나간 만큼 사람이 작아 보인다.
그림은 어디로 가는지 다 말하지 않는다.
제목도 물음으로 남는다.
사람과 배 사이에 아직 건너지 않은 물이 있다.
바람의 길
절벽이 크다.
그 아래 물이 넓다.
오른쪽 끝에 사람이 다리를 내놓고 앉아 있다.
말은 그 곁에서 고개를 낮춘다.
두 몸이 있는 바위 끝으로 밝은 물이 다가와 있다.
눈이 왼쪽으로 돌아간다.
먼 물 위에
배 한 척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