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바람의 백년/Ⅷ 예술철학

Ⅷ 예술철학 · 97 / 100

명예관장의 눈

다른 사람이 볼 자리를 만들다

The Honorary Director’s Eye

난무 / Wild Dance · 1997. 하늘의 새떼, 돌담 위에 앉은 새들, 집과 그 안의 작은 인물, 왼쪽의 말. / Birds in the sky and on a stone wall, a house with a small figure within, and a horse on the left.
〈난무〉 · 1997FŪDO 097
이대로 가는 길 / Going This Way · 2006. 화면 오른쪽 아래 사람, 왼쪽 아래 말, 나무가 늘어선 능선과 작은 집, 위쪽 수평선 아래 먼 배. / A figure at lower right, a pony at lower left, a tree-lined ridge and a small house, with a distant boat below the upper horizon.
〈이대로 가는 길〉 · 2006FŪDO 054

엽서 한 장

변시지는 서울의 화가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기당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모이지 않아 한 사람씩 따로 교섭했다고 회고했다.

미술관은 강구범이 건립해 기증했다.
화가의 관심과 기증자의 일이 만나 공공의 자리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모두 덮지는 않는다.

자기 그림만 걸기 위한 벽은 아니었다.
다른 화가의 작품이 함께 온다.
그림을 모으면 다른 눈으로 볼 자리도 필요해진다.

그리는 눈, 보여주는 눈

그릴 때는 아직 없는 선을 생각한다.
보여줄 때는 이미 있는 그림과 그 앞에 설 사람을 생각한다.
가까운 일이지만 같은 일은 아니다.

그림 사이를 조금 벌린다.
설명 글이 너무 크거나 작지는 않은지 본다.
사람의 눈이 어디에서 머물지 생각한다.

명예관장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배치와 조명을 그가 정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작품을 청하고 모은 일은 기록에 남아 있다.
그 일에서 보여주는 눈을 읽는다.

먼 곳의 벽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운영되었다.
미술과 문화, 역사를 함께 보여준 자리였다.
한 화가의 단독 회고전과는 다른 만남이었다.

누가 어떤 그림을 골랐는지 기록으로 살핀다.
한 사람의 눈이 모든 일을 했다고 쓰지 않는다.
그림이 먼 벽에 걸리기까지 여러 일이 있었을 것이다.

제목을 옮기고 작품을 구별하는 사람도 있다.
가까이서 아는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이 만난다.
서로가 지나친 곳을 가리킬 수 있다.

두 그림 사이

여기 있는 〈난무〉와 〈이대로 가는 길〉은 제공 도록의 도판이다.
실제 대여 작품과 등록번호까지 맞춘 것은 아니다.
지금 볼 수 있는 두 그림 앞에서 시작한다.

한 그림에서는 나는 새와 돌담의 새 사이로 눈이 움직인다.
다른 그림에서는 사람과 말 사이의 넓은 땅을 지난다.
먼 배에 닿기까지 걸리는 눈의 시간이 다르다.

먼저 본 그림이 다음 그림을 달리 보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순서가 화가의 삶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전시는 길을 하나 열어줄 뿐이다.

벽 앞의 사람

제주에서 그림을 보면 그곳까지 온 길도 함께 남는다.
밖의 빛과 바람이 생각날 수 있다.
그러나 제주에 오지 못한 눈을 문밖에 세워두지는 않는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도판이 필요하다.
이름과 크기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복제가 원화는 아니어도 첫 만남은 될 수 있다.

앉아 볼 자리도 둔다.
가까이 갔다가 물러설 곳도 남긴다.
벽은 그림을 받치고 그 앞의 바닥은 사람을 받친다.

화가의 말 곁에

화가는 그린 일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언제 어떤 그림을 두고 한 말인지 살펴야 한다.
가까운 목소리라고 모든 화면의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변시지는 자기 집과 나무가 〈세한도〉의 것과 다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느낌은 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르게 그린 것과 닮게 느낀 것이 함께 남았다.

보여주는 사람은 둘 다 남겨둘 수 있다.
화가의 말을 읽고 그림의 차이도 보게 한다.
자기 해석만 지켜야 작품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화면의 전시

「미술 감상법」에는 복제판과 출판물의 이야기가 있다.
미술관과 도서관, 음악 홀도 함께 생각한다.
잘 보라는 말 곁에 볼 수 있는 자리의 문제가 있었다.

웹 화면에 같은 크기로 놓아도 원화의 크기는 다르다.
번역을 쉽게 읽히게 해도 확신을 더해서는 안 된다.
편리한 화면이 그 차이를 감추지 않게 한다.

그림을 찾고 출처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잘못된 이름은 고칠 수 있어야 한다.
파일을 많이 쌓는 것보다 들어올 길을 분명히 낸다.

조금 물러서다

명예관장의 눈이 모든 사람을 대신 볼 수는 없다.
그림을 그리고 모은 뒤에는 다른 눈이 올 자리를 둔다.
가까운 작품도 혼자만의 만남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엽서를 보내는 손과 그림에서 물러서는 몸은 다르다.
그래도 둘 다 자기 자리 밖의 사람을 기다린다.
미술관은 그런 일들이 만나는 곳일 수 있다.

한 사람이 조금 물러선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자리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