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예술철학 · 90 / 100
가난한 예술가
그릴 수 있게 한 것들
The Poor Artist
가진 것의 목록은 아니다
〈풍랑〉의 아래쪽에 사람과 말이 가까이 있다.
집은 그 위에 있다.
사치스러운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은 가진 것을 모두 적은 목록이 아니다.
곁의 말이 재산인지도 화면은 말하지 않는다.
먼저 사람 옆의 다른 생명으로 본다.
가난한 화가라는 말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 사람이 그릴 수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했을까.
붓뿐 아니라 그 붓을 들 하루가 필요했을 것이다.
화집을 구해준 사람들
변시지는 형제들에게 큰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값비싼 고흐와 세잔의 화집도 구했다.
그림을 배워가던 시간에 다른 사람의 몫이 있었다.
그 도움으로 모든 어려움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때의 여유가 평생의 여유는 아니다.
다만 가난이라는 말 뒤에 가렸던 손이 보인다.
도움을 받아도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누군가가 마련해준 시간에 자기 눈으로 고르고 그린다.
그림은 혼자 그려도 그 하루를 혼자 만든 것은 아닐 수 있다.
적은 색
색이 적다고 물감을 살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덜 쓴 것과 없어서 쓰지 못한 것은 다르다.
거친 표면도 먼저 표면으로 본다.
변시지는 빛 아래서 달라 보인 색을 그림으로 시험했다.
같은 누런 계열도 그리는 것에 따라 바꿨다.
그 색 앞에는 가난이라는 설명보다 보는 눈이 먼저 있었다.
화면에서 덜어내는 일에는 선택이 있다.
생활에 필요한 것이 없는 일은 다르다.
빈 곳을 아름답다고 느껴도 그 차이는 남겨둔다.
기대는 몸
지팡이는 몸과 땅 사이에 놓인다.
몸의 기울기를 받는다.
그것을 보고 아픔이 재능을 낳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걸음이 느리면 생각할 틈이 있을 수 있다.
아파서 느릴 수도 있다.
지혜라는 말로 그 힘겨움을 덮지 않는다.
〈풍랑〉의 사람 곁에는 말이 있다.
날씨가 다 풀린 뒤에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
거친 획들 사이에 이미 곁이 있다.
테오의 이름도
고흐를 말할 때 테오의 지원도 함께 본다.
먹고 머무는 데 돈이 들었고, 캔버스와 물감도 필요했다.
결핍만으로 그림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변시지의 형제들과 테오의 사정은 같지 않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 모두 도움을 건넨 사람이 있다.
그 도움을 받는 손이 자기 그림의 방향을 정한다.
누가 가난을 더 잘 견뎠는지 겨루지 않는다.
다른 삶을 한 저울에 올려놓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일도 그릴 수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작업실의 하루
팔렸다는 말로 좋은 그림이라 할 수는 없다.
안 팔렸다는 말로 더 진실하다고 할 수도 없다.
거래의 기록 곁에 그림을 다시 놓는다.
작업할 시간과 머물 방이 필요하다.
식사와 재료도 있어야 한다.
화면에 그리지 않았어도 그 하루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에 걸 그림을 모으는 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엽서를 보내고, 부탁하고, 따로 교섭했다.
그림 밖에서 한 일이 그림을 사람들 앞으로 데려왔다.
남은 그림 곁에
작업실에 남았다는 것만으로 안 팔린 그림이라 부르지 않는다.
책에 실리지 않은 것과 전시되지 않은 것도 다르다.
한 점씩 그 까닭을 찾아본다.
뒤늦게 그림값이 올라도 지나간 배고픔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큰 칭찬이 그때의 하루를 대신 살아주지도 않는다.
남은 그림과 지나간 삶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림 옆에 이름과 기록을 남긴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도 적는다.
다음 사람이 그 앞에 설 수 있게 한다.
살아갈 수 있도록
고통을 칭찬하는 것만으로 화가를 돕지는 못한다.
그가 진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도 있다.
그림을 아끼는 마음이 사람에게도 닿았으면 한다.
그림은 소박해도 된다.
그린 사람의 생활까지 궁핍할 필요는 없다.
몇 개의 선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사람에게도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거친 획이 집 둘레를 지난다.
아래에는 사람과 말이 가까이 서 있다.
둘의 발밑에 작은 땅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