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바람의 백년/Ⅷ 예술철학

Ⅷ 예술철학 · 91 / 100

화가의 손

붓을 들고, 내려놓는 일

The Painter’s Hand

네모의 상 / Portrait of Nemo · 1951. 흰 블라우스와 짙은 치마를 입고 나무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여인. / A woman in a white blouse and dark skirt sits in a wooden chair with her hands overlapping.
〈네모의 상〉 · 1951
정오 / Noon · 2007. 촘촘한 짧은 획, 작은 집과 굽은 사람 사이의 짙은 나무. / Dense short marks surround a dark tree between a small house and a bent figure.
〈정오〉 · 2007FŪDO 012

무릎 위의 손

〈네모의 상〉의 여인은 두 손을 무릎에 포갰다.
흰 블라우스 아래 손가락이 밝다.
그 밑에는 짙은 치마가 있다.

그 손은 화가의 손이 아니다.
그러나 저 겹침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오래 보았을 것이다.
그려진 손 곁에 바라본 시간이 남는다.

무엇을 그릴까.
어디까지 손댈까.
붓을 쥔 손에는 멈출 자리도 필요하다.

끊어진 획

〈정오〉에는 짧은 획이 많다.
어떤 것은 짙고 어떤 것은 끊어진다.
눈이 획을 따라가다 그 사이에서 늦어진다.

마른 붓이 지나간 듯하다.
그러나 도판만 보고 손목의 힘과 속도를 다 알 수는 없다.
거침을 보고, 모르는 동작은 그대로 둔다.

다시 보면 거칠다는 말 하나로는 모자란다.
가는 획이 있고 겹쳐 짙어진 곳이 있다.
그 작은 차이를 따라 손에 조금 가까이 간다.

눈이 배운 것을

변시지는 현장에서 많이 보고 익혀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기억으로 그려도 그 본 시간이 필요했다.
기억은 눈의 수고를 덜어주는 지름길이 아니었다.

손이 그리면 눈이 다시 본다.
옆의 선이 달라지면 방금 그은 선도 달리 보인다.
손은 이미 배운 것만 되풀이하지 않는다.

포갠 손과 바람 속의 굽은 몸은 다르게 그려졌다.
그러나 둘 다 제 둘레와 함께 놓여 있다.
그 둘레까지 보던 손을 생각한다.

익숙한 손도

몸은 도구의 위치를 설명하기 전에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메를로-퐁티의 몸에 관한 사유를 이 자리에 빌려본다.
손의 앎은 머릿속 지시를 따르는 일만은 아니다.

익숙한 손도 예상과 다른 선을 긋는다.
그때는 다시 보아야 한다.
오래 그렸다고 매번 옳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손을 이끌 때가 있다.
손이 남긴 뜻밖의 획이 생각을 바꿀 때도 있다.
그림은 그 사이에서 달라진다.

칼이 늦어지는 곳

『장자』의 포정도 어려운 곳에서는 동작을 늦춘다.
눈을 모으고 칼을 아주 조금 움직인다.
익숙함 안에 조심스러움이 있다.

화가의 손을 그 곁에 놓아본다.
잘 움직이는 손은 멈칫할 수도 있다.
더 가면 안 될 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옆의 형상을 살리려고 붓을 뗀다.
선이 끝나고 밝은 곳이 남는다.
그리지 않은 다음 자리도 그림에 속한다.

붓을 놓은 시간

변시지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손댔다고 했다.
집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날들도 있었다.
그동안 구도에 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젖은 곳을 건드리지 않는다.
조금 물러서서 본다.
붓끝이 화면에 닿지 않은 시간도 한 그림의 시간이다.

더 좋게 하려다가 있던 좋은 것을 잃기도 했다고 했다.
많이 손댄다고 더 잘 돌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늙은 손 앞에서

화가는 집중이 달라진 일을 말했다.
그 말로 모든 획을 병의 흔적이라고 정하지 않는다.
그림은 몸의 사정을 모두 적은 표가 아니다.

몸의 어려움을 모두 초월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망설임이 있었을 수 있다.
고르고 바꾸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정오〉에는 많은 획이 있다.
만년의 그림이 늘 비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많은 획 사이로 나무 곁의 작은 사람이 보인다.

손이 떠난 자리

한 획에 한 생애를 다 넣지는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보았던 자리를 찾는다.
얼굴 아래의 손, 집 앞의 몸, 나무 곁의 빈 곳을 본다.

그린 사람은 이제 이 앞에 없다.
그가 두었던 것들은 서로를 받치며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이 그 자리에 온다.

무릎 위에 두 손이 있다.
손가락이 조금 밝다.
그 아래 치마가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