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생애와 장소 · 56 / 100
디아스포라의 기억
오사카에서 제주까지, 여러 장소가 남긴 삶
Memories of Diaspora
작은 배에서 큰 배로
변시지는 어린 날 일본으로 가던 배를 기억했다. 큰 배는 얕은 포구 가까이 붙지 못했다. 사람들은 작은 배로 옮겨 갔다. 위에서 내민 손이 사람을 끌어 올렸다. 그 사이 어느 아주머니의 흰 고무신이 벗겨져 바다에 떨어졌다. 훗날 구술에 남은 출발은 이런 장면이었다.
이 기억의 중심에는 섬 전체의 장엄한 윤곽보다 배와 배 사이의 높이, 잡아 주는 손, 놓친 신발이 있다. 이동은 지도 위의 화살표이기 전에 몸을 옮기는 일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떠난 뒤 어떤 화가가 될지 몰랐다. 그날의 바다에 훗날의 그림을 미리 넣어둘 필요는 없다.
1926년 서귀포에서 태어난 변시지는 1931년 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했다. 오사카에서 자랐고, 전후 도쿄에서 작업했다. 1957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1975년부터 제주에 삶과 작업의 기반을 두게 되었다. 이 날짜들은 길의 표지다. 날짜 사이에는 한 줄 연보가 담지 못하는 생활이 있다.
가족의 선택과 식민지의 조건
아버지가 일본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 변시지는 자녀 교육을 이야기했다. 일본을 다녀온 아버지가 아이들을 그곳에서 가르치려 했다는 회고다. 가족의 이주를 곧바로 강제 이송이라 부르면 이 구체적인 사정이 사라진다. 식민지 시대의 이동이었다는 사실과 개별 가족이 어떤 결정을 했는가는 함께 살펴야 한다.
선택이 있었다고 해서 그 선택의 조건까지 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교육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는가. 어느 말과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가. 가족이 더 나은 생활을 바라보는 일과, 그 생활을 둘러싼 권력의 차이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주를 온전히 자유로운 여행이나 온전히 수동적인 피해로만 나누기 어렵다.
디아스포라는 여기서 변시지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름이 아니다. 여러 장소에 걸쳐 살아온 기억과 소속을 읽는 관점이다. 가족의 사정, 배움의 기회, 인간관계와 작품을 함께 놓을 때 이 말은 구체적이 된다. 오사카라는 지명을 지우고 상실만 남기면, 오히려 그곳에서 실제로 산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젊은 얼굴을 미래에서 구해내기
〈자화상〉(1944)에는 젊은 얼굴이 화면 가까이 있다. 어두운 옷과 밝은 셔츠 사이로 목이 드러나고, 눈은 그림 밖을 향한다. 얼굴은 배경과 같은 갈색 계열을 나누면서도 그 안에 묻히지 않는다. 이때의 변시지는 이미 자신을 보는 자이자 보이게 만드는 화가였다.
이 얼굴을 훗날 제주 그림의 굽은 노인으로 곧장 옮겨 읽으면 청년의 현재가 짧아진다. 젊은 얼굴에는 젊은 얼굴의 빛과 크기가 있다. 화면을 채우는 방식도 다르다. 초기의 자신감과 후기의 낮아진 몸을 비교할 수는 있지만, 어느 한쪽을 다른 쪽의 미완성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몸의 불편함이나 식민지 출신이라는 조건만으로 이 그림을 설명할 수도 없다. 한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배우고, 좋아하고, 선택한다. 그의 얼굴을 운명의 증거로 보기보다, 그가 눈과 입과 어깨 사이에 어떤 거리를 두었는지 보는 편이 낫다. 생애의 무게는 그림을 대신하지 않는다.
귀국과 귀향 사이
1957년의 귀국과 1975년의 제주 정착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변시지는 구술에서 1957년 11월 15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서울은 태어난 서귀포와 다른 도시였다. 나라로 돌아오는 일과 어린 시절의 장소에 다시 사는 일 사이에는 새로운 생활을 꾸려야 하는 시간이 놓였다.
그는 귀국을 생각하면서 프랑스로 가는 길도 헤아렸다. 서울대에서 받은 초청과 생활에 대한 기대도 결정에 작용했다. 귀국을 오직 잃어버린 본질의 회복으로 설명하면, 당시 그 앞에 실제로 놓였던 여러 길이 지워진다. 끝을 아는 독자와 달리, 떠나던 사람에게 다음 생활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았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은 제주에 닿기 위한 빈 통로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그리고 정원을 그렸으며, 가르치고 거래하고 동료를 만났다. 여러 장소를 산다는 것은 한 곳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나머지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나중의 장소에서도 이전에 배운 시선이 함께 일한다.
여러 장소를 함께 보는 눈
에드워드 사이드는 「망명에 관한 성찰」에서 새 환경을 이전 장소의 기억과 함께 경험하는 시선을 대위법에 빗댔다. 그러나 망명의 상실을 창조성의 이익으로 보상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여러 세계를 동시에 보는 가능성과, 그 사이에 사는 어려움은 함께 남는다.
이 비교는 변시지에게 하나의 질문을 건넨다. 제주에서 본 것을 그릴 때 오사카와 도쿄와 서울에서 익힌 눈은 어디에 있는가. 초기 회화의 형태를 잡는 힘, 고궁을 오래 바라보던 주의, 새로운 땅에서 고쳐야 했던 색의 관계가 한 화면 안에서 만날 수 있다. 강제 망명과 가족 이주를 같은 사건으로 놓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사상적 영향이 아니라 작품을 나란히 읽는 방법이다.
한 색이 남았다고 해서 한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니다. 마른 풀잎색의 넓은 자리를 보면서도, 우리는 그 색이 작품마다 달라졌다는 화가의 말을 기억할 수 있다. 경험은 그대로 포개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선택되고 배치된다. 기억의 회화는 과거의 복사본이 아니라 현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배가 닿은 뒤의 거리
〈선착장〉(1979)에서 검은 뭍은 길게 뻗고, 배는 그 아래 가까이 놓여 있다. 사람은 뭍의 한쪽에 작게 서 있다. 배와 땅은 가까워 보이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붙지 않는다. 그 사이의 좁은 밝음이 두 형상을 나누며, 보는 눈을 잠시 붙잡는다.
이 장면을 귀환과 연결해 읽는다면 중요한 것은 도착 표시만이 아니다. 가까이 온 뒤에도 남는 간격이다. 귀환은 바다를 건너는 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돌아온 사람에게는 관계를 다시 맺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은 그 시간을 사건의 설명보다 배와 뭍의 거리로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 배를 어린 변시지가 탔던 배라고 부를 수는 없다. 구술의 출항과 회화의 선착장은 서로 다른 자료다. 둘을 연결하는 것은 동일한 배의 증명이 아니라, 건너감과 닿음에 대한 질문이다. 작품을 자전적 기록 한 장으로 좁히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귀환도 그 앞에 머물 수 있다.
그림도 다른 장소로 간다
화가가 장소를 옮기듯 그림도 장소를 옮긴다. 변시지는 서울 시절의 작품이 일본 화랑과 맺은 거래 속에서 이동한 일을 회고했다. 귀국은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을 보여주고 평가받고 건네는 관계는 국경을 건넌 뒤에도 이어질 수 있었다.
국제 전시를 이야기할 때도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붙여야 한다.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은 한국관의 전시 기간을 2007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로 기록한다. 그 기록을 1990년대의 일로 앞당길 수는 없다. 작품을 멀리 전하는 일은 그 작품이 걸렸던 구체적인 시간도 함께 전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느 미술관에 걸렸다는 사실이 그림의 보편성을 대신 증명하지는 않는다. 멀리 온 관객은 제주의 생활을 더 알아갈 수 있고, 제주를 아는 관객도 다른 눈과 만날 수 있다. 국제화는 장소를 지우는 번역이 아니라, 낯선 이름과 작은 도상에 다가갈 길을 만드는 일이다.
한 곳으로 줄어들지 않는 기억
변시지의 제주를 읽기 위해 일본과 서울을 지울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 오래 머문 곳은 떠난 뒤에도 그의 눈과 손에 남을 수 있다. 귀향은 출발 이전의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지닌 채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 된다.
이 관점에서 디아스포라의 기억은 결핍만의 기록도, 마침내 완성된 귀환의 증명도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이 쉽게 맞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 어긋남은 지워야 할 오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림을 여러 장소에서 읽게 하는 간격이 될 수 있다.
〈선착장〉의 배는 뭍 가까이에 있다. 작은 사람은 검은 땅 위에 남아 있다. 배와 땅 사이로 마른 풀잎빛이 가늘게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