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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PART II/STORY 21

STORY 21 · PART II ·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있어라

〈밭갈이〉 · 1979

글 변정훈

밭갈이
〈밭갈이〉 · 1979

말 한 마리.

그 뒤에서
사람 하나가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말이
한 걸음 가면

사람도 한 걸음 갔다.

말의 발.

사람의 발.

흙 위에서
같이 움직였다.

그 사이에

줄 하나가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다음 걸음을 그리려 했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붓을
고쳐 쥐었다.

붓끝은

아직 화면에 닿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있어라.”

고개 숙인 말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붓을 내려놓았다.

말과 사람은

그 자리에 있었다.

둘 사이의 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붓은
옆에 있었는데

손가락은 아직

붓을 쥔 모양으로
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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