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시간과 기억 · 73 / 100
미공개 작품의 시간
보이지 않은 그림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The Time of Works Not Publicly Shown
미공개라는 말의 범위
미공개라는 말은 작품의 성격보다 우리가 그것을 만난 경로를 먼저 가리킨다. 전시장에 나오지 않은 그림과 사진으로 알려진 그림, 도록에는 있으나 현재 위치를 모르는 그림은 서로 다르다. 팔리지 않았다는 말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지 않다. 한 단어로 묶기 전에 각각 어떤 문을 지나왔는지 살펴야 한다.
구술 중 변시지는 당시 살펴보던 자료에 나오지 않은 그림이 많다며, 일본에서 가져온 것 가운데 공부해온 과정의 그림들을 말한다. 이 증언은 대표작 바깥의 작업을 살펴볼 이유를 준다. 그러나 그 그림들이 평생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거나 현재 어디에 몇 점 있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숨은 그림을 찾는 일은 숨은 걸작을 미리 약속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그림은 알려진 형식을 반복할 수 있고, 어떤 그림은 그 형식에 닿기 전의 망설임을 보여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먼저 보아야 한다. 발견의 기쁨은 평가를 대신하기보다 평가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남기지 않은 것에 이야기를 더하기 전에
작가가 그림을 없앴다는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준다. 특히 팔리지 않아 태웠다는 이야기는 금세 가난과 자존심, 예술적 양심의 서사가 된다. 그러나 사건과 이유는 서로 다른 확인을 요구한다. 작품을 폐기했다는 기록이 있더라도, 그 이유를 후대의 감동적인 문장이 대신 말할 수는 없다.
이번에 읽은 자료에서는 변시지가 팔리지 않은 작품을 소각했다는 대목의 직접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불꽃을 장면으로 되살리거나 고결한 선택으로 해설하지 않는다. 이는 그 일이 없었다는 판정이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건 위에 이 글의 논지를 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림을 남기는 일에도, 남기지 않는 일에도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작업 중의 판단과 보관 여건, 당시의 관계를 모른 채 하나의 성격으로 묶으면 화가는 전설 속 인물이 된다. 알지 못하는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때로는 그 사람의 선택을 더 존중하는 방법이다.
그림은 전시되지 않아도 시간을 겪는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작품은 물질로 존재한다. 그러나 어둠이 색을 더 깊고 고귀하게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보존연구는 지지체와 물감층, 환경과 취급의 관계를 살핀다. 변색이나 균열은 작품별로 확인할 상태이지, 오래 기다린 그림에게 일괄적으로 부여할 시적 훈장이 아니다.
사진 한 장으로 표면의 모든 시간을 읽을 수는 없다. 빛을 받은 방향과 촬영 상태가 자국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질감을 작품의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일과 실제 상태를 조사하는 일은 서로 도울 수 있으나 같은 일은 아니다. 감상의 문장은 조사의 빈칸을 대신 채워서는 안 된다.
한 점을 꺼낸다는 말에는 보는 일보다 앞선 돌봄이 들어 있다. 안전하게 놓을 자리, 현재 상태를 남길 기록, 앞면뿐 아니라 뒷면을 살필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에 보여주는 속도보다 다음에도 볼 수 있게 하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기다림의 가치는 방치가 아니라 돌봄에서 생긴다.
보지 못한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한 그림도 화가의 작업 안에서는 이미 사건이었을 수 있다. 누군가 그 앞에서 물감을 고르고 멈추고 다시 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 개별 과정을 우리가 아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과 그 존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공개는 그림에 존재를 처음 부여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관계를 여는 행위다. 다른 작품과 나란히 놓이고, 다른 눈에 보이며, 이전에는 없었던 질문을 받는다. 바뀌는 것은 작품의 물질만이 아니라 그것이 읽히는 자리다. 같은 그림도 새롭게 배치되면 다른 부분이 먼저 보인다.
보는 사람이 적었다고 해서 작품이 더 순수한 것도 아니고, 많이 보였다고 해서 닳은 의미만 남는 것도 아니다. 익숙한 그림 앞에서도 새로 멈추는 눈이 있다. 미공개의 신비를 기리는 대신, 작품과 만나는 여러 방식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놓치는지 묻는 편이 더 멀리 간다.
카프카의 지시와 기록의 차이
카프카의 유고 처리 문제에는 실제 문서가 있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육필 자료와 편지, 그림을 모아 없애도록 지시한 1921년과 1922년의 메모 두 점을 기록한다. 이 사례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위대한 작가의 자기부정이 아니라, 특정한 지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지시가 있는 사례를 다른 작가의 미공개 작품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공개하지 말라는 말이 남아 있는지, 단지 공개한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지에 따라 질문이 달라진다. 침묵은 언제나 거절을 뜻하지 않는다. 거절이 확인된다면 그 또한 빈칸처럼 지워서는 안 된다.
비교는 변시지를 다른 작가의 운명에 넣는 일이 아니다. 각자가 남긴 증거의 형태를 더 분명히 하는 일이다. 한쪽에는 글로 남은 지시가 있고, 다른 쪽에는 아직 살펴야 할 기록이 있다면 그 차이부터 남겨야 한다. 그 차이를 지킨 뒤에야 유산에 대한 공동의 물음을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그림을 모든 그림의 결론으로 삼지 않다
이 글에 실은 2013년 〈마지막 작품〉은 제공 도록에 수록된 비교 도판이다. 새로 발견한 미공개작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화면에는 말과 해, 작은 배와 해안선이 남아 있다. 한 점의 점으로 모든 화업이 끝났다는 설명은 이 실제 형상들을 사라지게 한다.
말은 아래쪽 땅에 있고 배는 멀리 떠 있다. 그 사이의 넓은 자리가 화면의 시간을 늦춘다. 이 간격을 한 생애의 압축으로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읽을 수 있다는 것과 화가가 모든 미공개 작품의 뜻을 여기에 합쳤다는 것은 다르다. 그림은 그런 총괄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이름은 보는 순서를 강하게 이끈다. 우리는 앞의 모든 그림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전의 그림들은 그 결말을 알지 못한 시간에 그려졌다. 마지막 작품을 소중히 보는 것과 모든 작품을 마지막의 예고편으로 만드는 것은 같지 않다.
공공의 관심과 공개의 책임
한 화가를 더 널리 이해할 공공의 필요가 있다고 해서 작품의 소유와 이용 권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미술작품의 소유권과 저작권을 구별한다. 미공개 작품을 연구하고 공개할 때에는 작품을 가진 사람, 이용에 관한 권리, 남아 있는 기록을 각각 확인해야 한다.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후에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할 수는 없다. 저작권위원회의 공유저작물 안내도 이용허락, 보호기간 만료, 권리 기증 등을 구분한다. 이 글은 개별 작품의 권리를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공공적 가치와 자유이용 여부를 같은 말로 쓰지 않는다.
공개의 책임에는 이름 붙이는 방식도 포함된다. 가제가 확정 제목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고, 추정 연도는 추정임을 남기며, 도판을 손질했다면 그 범위를 밝힌다. 이런 작은 표시는 작품을 덜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다. 다음 사람이 같은 자료를 다시 살필 수 있게 한다.
서랍을 연 뒤의 시간
미공개 작품의 공개가 곧 한 화가의 완전한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 그림은 오래된 설명을 돕기도 하고 어긋나게 하기도 한다. 후기에는 모두 고요해졌다는 말 옆에 거친 그림이 나타날 수 있고, 초기에는 기술만 있었다는 말 옆에 이미 깊은 침묵이 보일 수 있다. 자료가 늘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서랍은 여기서 미공개의 비유이지, 모든 그림이 실제 서랍에 보관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을 여는 순간 이후다. 어디서 왔는지 기록하고, 다른 그림과 비교하고, 섣불리 붙인 해석을 고치는 일. 보여준다는 것은 마침내 다 알게 되는 일이 아니라 함께 더 살펴볼 수 있게 되는 일이다.
한 그림을 안전한 자리에 놓는다. 그 곁에 제목과 연도를 적는다. 모르는 칸은 비워둔다. 그리고 그림 앞에 조금 더 앉아 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