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논증 I · 2 / 34
근대는 이동하면서 재구성된다
제국의 양화에서 서울의 관찰법까지
이 논증은 변시지의 형식을 "일본에서 배운 서양화의 지방적 변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사카와 도쿄의 미술교육·전람회·언어 환경, 서울 비원의 장기 관찰은 서로 다른 제도와 장소 속에서 회화 기술을 다시 훈련시켰다. 근대성은 완성된 양식의 도착이 아니라 이동하는 기술과 신체가 매번 다시 조직되는 과정으로 읽힌다.
논증의 얼개
- 주장
- 변시지의 근대성은 완성된 서구 양식의 주변적 수용이 아니라 오사카·도쿄의 양화 교육, 전람회 제도, 서울 비원의 장기 관찰을 거치며 거듭 재구성된 이동의 산물이다.
- 작품 증거
- 〈자화상〉(1944)의 명암과 인물 재현, 〈K씨의 상〉(1952)의 포즈와 손, 〈가을애련정〉(1971)의 세밀한 기와·반영 묘사를 연속선 위에서 본다.
- 1차 자료
- 『변시지 구술채록문』의 오사카미술학교·데라우치 만지로·비원 관련 구술, 『예술과 풍토』, 1958년 신문 칼럼의 "풍속과 습관, 풍물, 풍토" 언급.
- 반례
- 장소가 바뀌어도 형식은 곧바로 바뀌지 않았다. 서울 시기의 세밀한 재현과 귀향 직후 〈제주〉(1976)의 밝은 다색 화면 사이에는 연속성이 남아 있어, 이동 자체가 곧 형식 변화를 낳는다는 강한 인과를 반박한다.
- 자료 한계
-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연도는 자료 사이에 1941/1942 표기가 엇갈리므로 학적 원자료로 확정해야 한다. 전람회 이력도 공식 도록을 우선한다.
- 기존 미술사와의 차이
- 중심에서 주변으로 양식이 일방향 확산된다는 모델보다, 제국의 미술 제도와 이동하는 화가의 신체가 여러 장소에서 기술을 다시 훈련하는 과정으로 본다.
- 잠정 결론
- 제주 회화는 일본·서울 시기의 부정이 아니라, 쌓인 기술이 다른 조건에서 다시 배열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