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V/이론적 중간결론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이론적 중간결론 · 18 / 34
제주화에서 풍토모더니즘으로
논증 V · 풍토는 색·선·여백·빛으로 형식화된다
향토색을 넘어, 분석적 범주의 정식화
1화가가 붙인 이름
절벽 위의 노인, 한 척의 배, 마른 풀잎색의 바다와 땅, 그 위에 놓인 검은 선. 논증 IV와 V(제8~11장), 그리고 그 앞 제7장 사례 B의 덜어냄에서 본 그림들이다.
변시지는 이 그림들에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 '제주화'다.1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추구한 본질이 제주를 넘어선 보편성에 있다고 밝혔다. 그리움과 기다림처럼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접속할 가능성이 있는 감정이다.2
이름은 한 섬을 가리키는데, 본질은 섬을 넘어선다. 이 장은 서론에서 제안한 분석어 '풍토모더니즘'을 논증 IV와 V의 결과에 비추어 다시 정의한다. 화가의 이름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 안에서 한 섬에서 형성된 그림이 어떻게 다른 장소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지 설명하려는 것이다.
2향토색: 식민지기의 제도와 시선
한국 근대미술에서 '향토색'은 중립적인 지역성의 이름이 아니었다. 1920~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지방색'과 '반도색'은 일본인 심사위원에 의해 적극 장려되었고, 초가·흰옷·풍속적 인물 같은 소재가 '조선다움'을 표상하는 장치로 반복되었다. 이후 한국인 비평가들은 이러한 소재주의와 식민지적 시선을 비판하면서 다른 의미의 '조선적' 미를 모색했다.3
따라서 변시지의 제주 회화를 향토색의 연장선으로만 읽으면, 지역적 도상의 존재를 형식적 특수성과 혼동하게 된다. 이 책이 묻는 것은 '제주다운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제주에서 오래 산 일이 회화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이다.
향토색이 지역의 표지를 화면에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면, 풍토는 지각·신체·시간이 형식을 재조직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이 구분은 식민지기의 향토색 담론과 변시지 후기 회화 사이에 역사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3형식의 논증이 찾은 것
제7장 사례 B와 논증 IV·V의 네 장(제8~11장)은 저마다 작은 것 하나를 보았다. 적게 남길수록 남은 것이 더 많은 일을 했다. 풍토는 풍경이 아니라 보는 방식을 바꾸는 조건이었다. 작은 배 하나가 먼 곳을 만들었다. 화면은 평평한 쪽으로 읽히지만 거리는 남았다. 마른 풀잎색은 어느 한 사물의 색이 아니라, 볕과 바람과 시간이 만든 색이었다. 검은 선은 가르고, 힘의 방향을 느끼게 하고, 자세를 세웠다. 여백은 풍토가 형상 없이 펼쳐진 곳이었다. 빛은 한쪽에서 오지 않고 색 안에 퍼졌다.
하나씩 보면 작은 관찰이다. 그러나 모아 보면 한 방향을 가리킨다. 풍토가 화면의 형식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4'제주화'라는 이름 읽기
'제주화'는 '제주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보다 넓게 읽힐 수 있다. 논증 IV와 V에서 본 제주 회화에는 되풀이되는 형식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주화'를 소재의 이름만이 아니라, 하나의 회화 방식까지 포함하는 말로 읽어 본다.
그 방식은 제주에서 나왔다. 그러나 먼 배를 바라보는 마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느 한 섬에만 속하지 않는다. 화가가 말한 보편은 제주의 자취를 지워서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기다림처럼 다른 문화권에서도 재해석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보편은 지역의 반대가 아니다. 지역을 깊이 통과한 감정의 끝에 있다.
5분석적 범주로서의 풍토모더니즘
'풍토모더니즘'은 화가가 사용한 말이 아니며, 기존 미술사에서 공인된 사조명도 아니다. 이 책은 이를 분석적 범주로 제안한다. 그 목적은 제주 회화를 새로운 '-주의'로 고정하는 데 있지 않고, 지역성으로 분류되어 온 요소가 실제로는 회화 형식의 변환 원리일 수 있음을 설명하는 데 있다.4
이 범주는 네 가지 조건을 갖는다. 첫째, 외부에서 습득한 근대 회화의 언어가 존재한다. 둘째, 특정 장소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지각과 몸의 습관이 변한다. 셋째, 그 변화가 도상에 그치지 않고 선·색·공간·스케일·반복 같은 형식의 재조직으로 나타난다. 넷째, 지역성은 보편성을 얻기 위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번역 가능한 형식으로 전환된다.
이 정의는 환경결정론과 지역주의를 동시에 피하려는 장치다. 풍토가 형식을 '만든다'고 말하기보다, 화가가 가진 기술과 기억이 풍토 속에서 재배열되며 형식이 형성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변시지에게 그 장소는 제주였지만, 개념 자체는 제주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장소와 다른 작가에게 적용하려면 동일한 네 조건이 작품과 자료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풍토모더니즘은 결론이라기보다 연구 가설이다. 이 책의 나머지 장들은 몸·노동·이동·번역의 문제를 통해 그 가설의 설명력을 시험한다.
풍토는 소재가 아니라 형식의 조건이다. 이 명제가 성립할 때 제주화는 향토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 과정은 세 걸음으로 줄일 수 있다.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풍토는 몸에 들어온다. 몸에 들어온 풍토가 형식이 된다.
그는 제주라는 한 장소를 깊이 통과한 형식을 만들었고, 그 형식은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의미로 번역될 가능성을 얻었다. 논증 IV와 V가 다룬 것은 배의 자리, 거리, 색, 선, 빈 곳, 빛, 곧 시각의 형식이었다. 논증 VI은 이 가설의 둘째 걸음, 풍토가 몸에 들어오는 과정을 화면 속 신체의 자세에서 검토하며, 그 첫 장인 제12장은 바람을 맞는 몸에서 시작한다.
이름은 한 섬에서 나왔다. 그리움은 섬을 건넌다.
주와 출처
- ↑ '제주화'라는 명칭의 출처:
- ↑ 보편성에 관한 화가의 기록:
- ↑ 1920~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를 둘러싼 향토색 논의: 김현숙, 「日帝時代 동아시아 官展에서의 地方色—朝鮮美術展覽會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2 (2004): 45–93; 홍선표, 「1930년대 '향토색' 담론과 '조선색' 풍경화의 추구 (1)」, 『미술사논단』 60 (2025): 7–27. 조선미술전람회(선전)는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총독부가 해마다 연 관설 공모전.
- ↑ '풍토적 모더니즘'이 아니라 '풍토모더니즘'이라 쓰는 까닭은 모더니즘 앞에 붙인 꾸밈말이 아니라 한 낱말의 이름으로 세우기 위해서다. 영어에서는 고유 사조명으로 고정하지 않고 "a modernism of milieu"로 풀어 쓴다(제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