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평/풍토는 풍경이 아니다/논증 IX/제19장
학술판 · 풍토는 풍경이 아니다 · 제19장 · 30 / 34
주변에서 다시 쓰는 모더니즘
제주·한국 현대미술·탈중심화
논증 IX · 근대성은 병렬적 비교와 비대칭 번역 속에 위치한다
1로마의 풍토
1981년 10월, 로마의 아스트롤라비오 화랑에 그의 그림이 걸렸다. 화랑이 초대해 연 전시, 곧 초대전이었다.1 그는 전시를 화랑에 맡겨 두고 스케치를 하러 떠났다. 로마에서 남쪽 바닷가 도시 소렌토까지 내려갔고, 프랑스에도 갔다.2
그는 뒤에 그때의 로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풍토라는 것이 중요해." 로마 같은 데서는 보는 것마다 예술적이어서, 그리는 것마다 작품이 된다고 했다.3
그에게 풍토는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주의 풍토에서 자란 그의 그림은, 세계의 미술 가운데 어디에 서 있을까.
2중심에서 주변으로가 아니라, 주변에서 다시 쓰기
20세기 미술사는 오랫동안 중심 도시에서 발생한 혁신이 주변으로 확산된다는 선형 서사를 생산해 왔다.4
파르타 미터의 탈중심화 논의는 비서구 미술을 서구 정전의 뒤늦은 파생으로 읽는 관점을 비판한다.5 근대성의 복수성과 유럽 범주의 상대화를 제기한 인접 논의들도 같은 문제를 다른 학문 영역에서 제기해 왔다.6 7
이 관점은 변시지를 일본과 유럽에서 배운 양식의 '지역적 변형'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근대 회화의 문제를 제주에서 새로 구성한 사례로 보게 한다.
변시지 자신의 글에도 이와 공명하는 문장이 있다. 그는 현대미술의 다양성 아래 공통된 저류를 말하면서도, 민족·시대·기후의 조건이 예술의 모체가 된다고 보았다. 보편과 지역을 상호 배타적으로 두지 않은 것이다.8
따라서 이 책에서 모더니즘은 하나의 양식 목록이 아니라, 재현·평면·색·선·매체·주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검토하는 역사적 장으로 이해한다. 변시지의 위치는 그 장의 변두리에서 중심을 모방한 곳이 아니라, 다른 조건에서 질문을 다시 구성한 곳이다.
3형식은 이동하고, 장소는 형식을 변형한다
1981년 유럽 여행에서 그는 로마와 소렌토, 프랑스의 풍경을 자신의 기법으로 그렸고, 돌아와 그 스케치를 유화로 옮겼다.9 네비스는 이 유럽 그림 가운데 몇 점의 기법이 뒤의 제주 그림을 미리 보여 준다고 적었다.10 같은 손과 기법이 다른 장소를 통과하면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반대로 유럽에서 본 건축과 도시의 이미지가 제주대학교 건물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그의 회고는 시선이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3 중심에서 주변으로 양식이 전달된 것이 아니라, 여러 장소를 통과한 경험이 서로의 시각성을 갱신했다.
이런 왕복 운동은 풍토모더니즘을 고립된 지역주의가 아니라 이동과 재구성의 과정으로 보게 한다.
4비교미술사: 땅이 형식이 되는 서로 다른 방식
안젤름 키퍼와 앤디 골즈워디의 작업을 변시지와 나란히 놓는 목적은 세 작가를 같은 범주에 묶는 데 있지 않다. 비교의 질문은 하나다. 장소는 각각 어떤 매개를 통해 작품의 형식이 되는가.
키퍼의 작업에서 땅은 역사적 기억과 물질의 중량으로 등장한다. 사진·모래·짚·납 같은 재료는 독일의 역사와 토지의 상흔을 물질화한다.11 장소는 화면에 실제 물질로 붙는다.
골즈워디의 장소특정적 작업에서는 돌·얼음·잎 같은 현지 재료와 제작 행위가 장소의 시간과 직접 결합한다. 작품은 장소를 묘사하기보다 장소 안에서 사건으로 발생한다.12
변시지의 경우 장소는 캔버스에 흙이나 돌을 붙이는 방식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오랜 거주와 반복된 관찰을 거쳐 선의 기울기, 색채의 수렴, 형상의 축소, 여백의 확대라는 회화적 문법으로 변환된다. 그는 자기에게 허용된 것을 "자연 속에서 묵묵히 생활하며 자연에 감동하고 생각하며 조형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13
세 작가의 차이는 '장소성'이라는 말이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다양한 매개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변시지의 독자성은 장소의 물질 자체보다 장소를 살아 낸 신체와 회화 형식 사이의 번역에 있다.
5풍토모더니즘의 위치
로마에서 그는 작품을 팔기보다 보여 주러 왔다고 말했다.14 유럽을 다녀온 뒤에는 제주에서 그린 자기 그림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15 이 진술을 주변부 화가의 겸양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작업이 다른 미술의 장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시험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풍토모더니즘은 중심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중심을 세우기 위한 기획이 아니다. 제16장의 '싸우지 않는 미학'과 동일한 개념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중심을 유일한 규범으로 삼지 않고, 차이를 유지한 채 서로 다른 장소의 형식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풍토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준을 단일한 중심에서 파생된 규범으로 두지 않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형식이 어떻게 새로 구성되는지를 비교하기 위한 분석 틀이다.
따라서 제주라는 지역성은 세계미술사에 진입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 비교가 가능해지는 구체적 조건이다. 문제는 지역성을 '고유함'이라는 본질로 신화화하지 않고, 형식의 변환 과정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제주의 풍토에서 자란 형식은 세계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의 형식들과 비대칭적이지만 동등한 비교 관계에 들어간다.
주와 출처
- ↑ 『변시지 구술채록문』(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 이인범) 인적사항 및 활동경력: 1981. 10. 6~20, 제16회 《변시지 초대전》(Astrolabio 화랑, 이탈리아 로마).
- ↑ 같은 채록문 제6차 구술(2005년 1월 19일), 266쪽. 전시보다 유럽 일대를 돌며 스케치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고 했다.
- ↑ 같은 채록문 제6차 구술, 267~268쪽.
- ↑ 한 예로, 뉴욕 현대미술관의 앨프리드 바(Alfred H. Barr Jr.)가 1936년 전시 《입체주의와 추상미술(Cubism and Abstract Art)》 도록 표지에 실은 도표가 자주 거론된다. 근대 미술을 유럽의 여러 흐름이 화살표로 이어지는 한 줄기로 그렸다.
- ↑ Partha Mitter, "Decentering Modernism: Art History and Avant-Garde Art from the Periphery," The Art Bulletin 90, no. 4 (2008): 531–548.
- ↑ S. N. Eisenstadt, "Multiple Modernities," Daedalus 129, no. 1 (Winter 2000), pp. 1–29. 본문은 다음 대목을 풀어 쓴 것이다. "modernity and Westernization are not identical; Western patterns of modernity are not the only 'authentic' modernities"(3쪽), "a story of continual constitution and reconstitution of a multiplicity of cultural programs"(2쪽). 슈무엘 아이젠슈타트(Shmuel N. Eisenstadt, 1923~2010)는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 ↑ 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 ↑ 변시지, 『예술과 풍토』(열화당, 1988), 「제주에 산다」 가운데 '예술과 풍토'. '저류(底流)'와 '조형활동(造形活動)'은 책의 표기.
-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6차 구술, 267쪽. 『우성 변시지 유럽기행화집』(삼화출판사, 1982).
- ↑ 캐럴 네비스(Carole Neves,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정책분석실장), 「화가와 바다: 변시지」. 영어 원문: "The technique utilized in a number of these works foreshadows his subsequent paintings of Jeju."
- ↑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길: 마르크의 모래(Wege: märkischer Sand)〉(1980), 리넨에 유채·에멀션·셸락·젤라틴 실버 프린트·모래·숯, 285.2×440.7cm,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도리스와 도널드 피셔 컬렉션). 재료와 크기는 미술관의 소장품 설명을 따랐다(2026년 9월 29일 접속). 키퍼는 1945년 독일 도나우에싱겐에서 태어나 1992년부터 프랑스에서 작업한다.
- ↑ 앤디 골즈워디(Andy Goldsworthy, 1956~), 〈스톰 킹 담(Storm King Wall)〉(1997~1998), 밭돌, 152.4cm×694.5m×81.3cm, 뉴욕주 뉴윈저 스톰 킹 아트센터(소장 번호 1998.1). 아트센터의 소장품 설명(2026년 9월 29일 접속)에 따르면, 다섯 사람의 영국 담 장인이 시멘트 없이 쌓았고, 처음 계획한 750피트에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연못으로 들어갔다가 서쪽 경계까지 이어졌다. 인용은 같은 설명에 실린 골즈워디의 말 "A good wall is drawn, it expresses the landscape through which it travels."를 풀어 옮긴 것이다.
- ↑ 『예술과 풍토』, 「제주에 산다」 가운데 '자연미와 예술충동'. 홍성후는 거의 같은 문장을 변시지, 「산따라 물따라」, 『제주신문』(1979. 8. 2)에서 인용한다.
- ↑ 『변시지 구술채록문』 제6차 구술, 268쪽.
- ↑ 같은 채록문 제6차 구술,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