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풍토 · 제5부 · 19 / 24
물질성
들어가며
다섯 번째 문이다.
앞의 네 문은 눈으로 지나왔다.
색을 보고 선을 보고 여백을 보고 배치를 보았다.
이 문은 손으로 지난다.
무엇으로 그렸는가.
그 물음이다.
물감은 색이면서 물질이다.
색으로 보면 화면 위에 얇게 얹혀 있다.
물질로 보면 화면 위에 쌓여 있다.
쌓인 것에는 두께가 있다.
두께에는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이 스스로 빛을 받기 시작한다.
재료는 대개 그 땅에서 구한다.
멀리서 사 오는 물감도 있지만, 화가가 손에 익힌 것은 가까이 있던 것이다.
흙과 재.
짚과 돌.
납과 얼음.
이 문 앞에 세 사람이 선다.
키퍼는 땅을 화면으로 옮겼다.
골즈워디는 화면을 땅에 두었다.
반 고흐는 물감 자체를 물질로 만들었다.
세 방향이 갈린다.
그리고 세 방향이 모두 풍토에 닿아 있다.
이 부에는 반대 증인이 없다.
앞의 네 부에는 명제를 흔드는 사람이 하나씩 있었다.
색에는 뭉크가 있었고 선에는 추사가 있었다.
여백에는 카푸어가 있었고 문법에는 고갱이 있었다.
여기에는 없다.
물질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흙은 흙이고 납은 납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숨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