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형식을 낳는다

화가와 풍토 · 제2부 · 6 / 24

선

들어가며

두 번째 문이다.

색이 면이라면 선은 시간이다.

색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칠해진 자리가 있을 뿐이다.

선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어디에서 붓을 댔고 어디에서 뗐는지가 남는다.
어느 자리에서 힘을 주었고 어느 자리에서 빨라졌는지도 남는다.

한 획을 긋는 데 몇 초가 걸렸는지 알 수 있다.

색은 고칠 수 있다.
덧칠하면 아래 색이 덮인다.

선은 고치면 두 개가 된다.

지운 자리가 보이고, 다시 그은 자리가 보인다.
망설임이 숨지 못한다.

그래서 선은 정직하다.

이 부의 물음은 이것이다.

붓의 속도는 무엇이 정하는가.

손이 정한다고 답하면 절반이다.

손은 붓을 쥔다.
그런데 붓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가 속도를 정한다.

젖은 종이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다.
마른 종이에서는 오래 머물 수 있다.

돌에 새기는 속도와 종이에 긋는 속도는 다르다.

재료가 속도를 정하고, 재료는 그 땅에서 온다.

이 문 앞에 세 사람이 선다.

그런데 순서가 앞의 부와 다르다.

앞의 부에서는 반대 증인이 맨 뒤에 왔다.
명제를 세운 다음 흔들었다.

이 부에서는 반대 증인이 맨 앞에 온다.

추사다.

선에서 가장 멀리 간 사람이 동시에 이 명제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예가 가장 강한 반례인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먼저 말하는 편이 정직하다.

그다음에 셋슈가 온다.
젖은 종이의 속도다.

마지막으로 에밀리 카가 온다.
위로 솟는 붓이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관계를 대륙과 맺었다.

추사는 대륙의 글씨를 보고 대륙에 남았다.
셋슈는 대륙의 산수를 보고 자기 땅으로 돌아왔다.
에밀리 카는 유럽에서 배우고 자기 땅의 숲으로 들어갔다.

같은 일을 하고 다른 데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