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형식을 낳는다/제2부 · 선

화가와 풍토 · 제5장 · 8 / 24

셋슈, 젖은 종이의 속도

제2부 · 선

하나

세로로 긴 종이다.

먹뿐이다.
색이 없다.

화면 가운데를 선 하나가 위아래로 가른다.

굵고 검다.
아주 빠르게 그은 선이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바위의 모서리인지 절벽의 균열인지 분명하지 않다.
둘 다일 수도 있다.

급하게 그은 선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 선을 중심으로 형태들이 붙어 있다.

바위 같은 것, 나무 같은 것.
지붕 같은 것도 있다.

아래쪽에 작은 인물이 있다.

아주 작다.
손톱만 하다.

걸어가는 중이다.

위쪽은 비어 있다.

안개다.
혹은 종이다.

구별되지 않는다.

먹의 농담을 보자.

진한 먹과 옅은 먹이 붙어 있다.
그 사이가 번져 있다.

번진 자리가 실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형태가 생겼다.

붓이 지나간 속도가 다 다르다.

어떤 자리는 빠르고 어떤 자리는 멈췄다.
멈춘 자리에 먹이 고였다.

고인 자리가 무게가 된다.

앞 장의 화면과 비교해 보자.

「세한도」의 붓은 말라 있었다.
종이의 결이 보였다.

여기서는 붓이 젖어 있다.
종이가 먹을 먹는다.

한쪽은 종이 위에 있고 다른 쪽은 종이 안으로 들어간다.

둘

셋슈는 1420년에 일본 서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절에 들어갔다.
승려가 되었다.

교토로 갔다.
그곳의 큰 절에서 지냈다.

당시 화승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확실한 기록은 적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다.

젊은 시절 그는 이름이 크지 않았다.

교토는 그림의 중심이었다.
중심에서 그는 여러 사람 중 하나였다.

1467년에 그는 명나라로 갔다.
사절단에 끼어 간 것이다.

마흔일곱 무렵이다.

이 해를 기억해 두자.

같은 해에 교토에서 큰 난이 일어났다.
십 년 넘게 이어진 내전이다.

교토가 불탔다.
절과 집과 그림이 함께 탔다.

그가 배를 타고 떠난 해에 그의 도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그는 이 년쯤 있었다.

배울 스승을 찾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찾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산과 강을 보았다.

책에서 본 산수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돌아왔을 때 교토는 여전히 전장이었다.

그는 교토로 돌아가지 않았다.
서쪽 지방에 머물렀다.

야마구치 근처에 화실을 두었다.

중심을 떠난 것이다.

거기서 그의 그림이 나왔다.

일흔 넘은 나이까지 그렸다.

만년에 「파묵산수도」를 그려 제자에게 주었다.
스스로 글을 붙여 그림 위에 썼다.

또 만년에 실제 장소를 그렸다.

바다에 길게 뻗은 모래 언덕이 있는 곳이다.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가서 보고 그렸다.

셋

여기에 이 장의 논지가 있다.

일본은 습하다.

서장에서 우리는 와쓰지의 분류를 보았다.
몬순, 사막, 목장.

일본은 몬순이다.

비가 많고 공기에 물기가 있다.

이 조건이 종이에 직접 작용한다.

종이가 습기를 먹으면 먹이 번진다.

붓을 대고 있으면 먹이 계속 퍼진다.
멈추면 뭉친다.

그러니 빠르게 지나가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방법이 나온다.

번짐을 막으려 하지 않고 이용하는 방법이다.

먹을 던지듯 놓는다.
번지도록 둔다.

번진 모양이 형태가 된다.

파묵이라 부른다.
먹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통제의 포기가 아니다.
통제의 이전이다.

붓이 하던 일을 종이가 나누어 한다.

와쓰지가 몬순의 사람에 대해 한 말을 떠올려 보자.

자연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니 맞서기보다 받아들인다고 했다.

파묵이 바로 그 태도다.

종이가 하는 일을 막지 않는다.

여기서 세 가지가 따라온다.

첫째, 속도가 형태를 정한다.

느리게 그은 선은 무엇인지 알려 준다.
바위면 바위처럼 생기고 나무면 나무처럼 생긴다.

빠르게 그은 선은 알려 주지 않는다.

굵기만 남고 정체는 남지 않는다.

그러면 보는 사람이 채운다.

화면 가운데의 그 선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하지 못한다.
정하지 못한 채로 본다.

빠른 선은 뜻을 열어 둔다.

둘째, 여백이 물질이 된다.

앞 장에서 「세한도」의 여백은 종이였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다.

셋슈의 여백은 다르다.

안개다.

습한 땅에서 안개는 매일의 일이다.
아침에 산이 없어지고 낮에 다시 생긴다.

그러니 흰 자리가 빈 자리가 아니다.
무엇이 있는 자리다.

두꺼운 흰 것이 있다.

이 대목에서 밝혀 둘 것이 있다.

셋슈는 3부 여백에 놓아도 되는 화가다.
그의 여백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 책은 그를 선 부에 두었다.

그의 여백이 붓의 속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빠르게 지나간 붓이 남긴 자리가 안개가 되었다.
여백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속도가 여백을 만들었다.

원인 쪽에 놓은 것이다.

셋째, 실경을 그려도 지도가 되지 않는다.

그는 실제 장소를 그렸다.

가서 보고 그렸으니 사실에 가까워야 한다.

그런데 그 화면은 지도가 아니다.

높은 데서 내려다본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다.

왜 그런가.

안개가 잦은 땅에서는 한 번에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만큼 보이고 조금 뒤에 저만큼 보인다.

여러 번 본 것을 합쳐야 한 장소가 된다.

그러니 그의 실경은 여러 시간을 겹친 것이다.

습한 땅의 실경은 원래 그렇게 생긴다.

넷

변시지의 화면 앞에 서 보자.

이 대면에서는 조건이 닮았다.

두 땅이 다 몬순이다.

일본에 비가 많고 제주에 비가 많다.
둘 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검은 선을 썼다.

셋슈는 먹으로 그었고 변시지는 검은 물감으로 그었다.

재료는 다르지만 검다는 것은 같다.

그런데 선의 성질이 반대다.

셋슈의 선은 번진다.
변시지의 선은 마른다.

같은 습한 땅에서 왜 반대가 되는가.

바람 때문이다.

일본의 습기는 고여 있다.
분지가 많고 산이 막아 준다.

고인 습기는 번지게 한다.

제주의 습기는 고이지 않는다.
바람에 실려 지나간다.

지나가는 습기는 마르게 한다.

바다 옆이라 습한데 바람이 세서 마른다.

이 모순이 제주의 조건이다.

젖으면서 마르는 땅이다.

그래서 변시지의 화면은 젖어 있지 않다.
습한 땅의 그림인데 마른 그림이다.

마른 풀잎색이 그 결과다.

풀은 비를 맞고 자랐다.
그리고 바람에 말랐다.

젖었던 것이 마른 색이다.

처음부터 마른 사막의 색과 다르다.

앞의 부에서 본 오키프의 마름과 여기서 갈린다.

한쪽은 마른 채로 있던 것이고 다른 쪽은 젖었다가 마른 것이다.

두 번째 닮음이 있다.

두 사람 다 밖에서 배워 안으로 돌아왔다.

셋슈는 중국에 가서 산수를 보고 돌아왔다.
변시지는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고 돌아왔다.

앞 장의 추사는 밖에서 배워 밖에 남았다.

세 사람이 삼각을 이룬다.

밖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하는가.

추사는 그것을 지켰다.
셋슈와 변시지는 그것을 자기 땅에 부었다.

지킨 사람의 형식은 시간을 건너가고, 부은 사람의 형식은 장소에 뿌리내린다.

세 번째 닮음이 있다.

두 사람 다 중심을 떠났다.

셋슈는 교토로 돌아가지 않고 서쪽에 남았다.
전쟁이 이유였다.

변시지는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갔다.

중심에서는 남과 견주게 된다.
변방에서는 땅과 마주하게 된다.

견주기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

이제 차이를 보자.

인물의 크기가 다르다.

셋슈의 화면에서 사람은 아주 작다.
산이 크고 사람이 작다.

사람은 풍경 안에 있다.

변시지의 화면에서 사람은 크다.
화면의 중심에 있다.

풍경이 물러나고 사람이 남는다.

이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가.

산수화의 사람은 그 풍경에 속해 있다.
자연의 일부다.

변시지의 노인은 풍경에 속해 있지 않다.
풍경을 견디고 있다.

속한 사람과 견디는 사람은 자세가 다르다.

속한 사람은 걷는다.
견디는 사람은 서 있다.

셋슈의 인물은 지나가는 중이고 변시지의 노인은 머무는 중이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셋슈는 승려였다.

그의 그림에는 세상을 조금 떨어져 보는 자리가 있다.
슬픔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변시지는 승려가 아니었다.

그의 화면에는 애도가 남아 있다.

같은 몬순의 땅에서 한쪽은 놓아 보냈고 다른 쪽은 붙들었다.

다섯

종이가 젖어 있다.

붓을 대면 먹이 번진다.
그러니 오래 대고 있을 수 없다.

한 번 지나가고 그다음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종이가 일한다.

먼 섬의 화면에서는 바람이 지나간다.
그것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지나간 뒤에 자리가 남는다.

두 사람 다 자기가 다 하지 않았다.

젖은 것에게 맡기고 마른 것에게 맡겼다.

번짐이 아직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