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형식을 낳는다/제2부 · 선

화가와 풍토 · 제4장 · 7 / 24

추사, 풍토 없는 정신

제2부 · 선

하나

가로로 긴 종이다.

오른쪽에 집이 하나 있다.

지붕이 낮다.
벽에 둥근 창이 하나 뚫려 있다.

사람은 없다.

집 왼쪽에 나무가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다.

네 그루쯤이다.

늙은 나무다.
한쪽 가지는 마르고 한쪽만 살아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비어 있다.

종이의 절반 넘게 아무것도 없다.

땅이 없다.
집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하늘도 없다.
위쪽 경계가 그냥 종이다.

먹은 아주 아껴 썼다.
진한 먹이 거의 없다.

가느다란 선 몇 개로 집을 세웠다.

붓이 마른 상태로 지나간 자리가 있다.
갈필이다.

종이의 결이 보인다.

이 그림은 제주에서 그려졌다.

1844년, 대정에서다.
그가 유배 중일 때다.

그런데 이 화면에 제주가 없다.

바다가 없다.
바람이 없다.

돌담도 없고 초가도 없다.
말도 없고 까마귀도 없다.

여기서 이 장이 시작된다.

둘

김정희는 1786년에 태어났다.

호가 여럿이다.
추사와 완당이 널리 쓰인다.

스물넷 무렵에 연경에 갔다.
아버지의 사행을 따라간 것이다.

그곳에서 청나라의 학자들을 만났다.

옹방강과 완원.
당대의 큰 학자들이었다.

젊은 조선의 선비가 그들과 만나고 인정을 받았다.

이 만남이 그의 평생을 정했다.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은 그림이 아니었다.
글씨였고, 더 정확히는 옛 글자였다.

금석학이라 부른다.

비석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모으고 견주어 읽는 학문이다.

돌에 새긴 글자는 붓으로 쓴 글자와 다르다.

칼로 파야 하니 획이 굵고 모가 난다.
세월에 깎여 끝이 부스러진다.

그 부스러진 자리가 힘이 된다.

추사는 그 힘을 붓으로 옮기려 했다.

조선에 돌아와 오래 공부했다.

북한산의 비석을 찾아가 글자를 읽고 고증했다.
누가 언제 세운 것인지를 밝혔다.

책상 앞의 학문이 아니었다.
산에 올라가 돌을 만지는 학문이었다.

글씨를 아주 많이 썼다.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가 한 말이라고들 한다.

확인할 수 없는 말이다.
다만 그만큼 썼다는 것은 남은 글씨가 증명한다.

1840년에 제주로 유배되었다.

대정에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두는 형이었다.

여덟 해가 넘게 있었다.
1848년에 풀렸다.

풀린 뒤에도 편안하지 않았다.
몇 해 뒤 북청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1856년에 세상을 떠났다.

셋

여기에 이 장의 논지가 있다.

추사는 제주에서 글씨를 완성했다.

그런데 그 글씨에 제주가 없다.

이 문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앞쪽은 사실에 가깝다.

여덟 해의 고립이 그를 붓 앞에 앉혀 두었다.
할 일이 없었고 만날 사람이 적었다.

쓰는 것 말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니 유배가 그를 단련한 것은 맞다.

뒤쪽도 사실이다.

「세한도」에 제주의 사물이 하나도 없다.
그의 글씨에도 없다.

획의 굵고 얇음이 급하게 바뀐다.
꺾이는 자리가 모가 난다.

그것은 돌의 속도다.
칼이 돌을 파는 속도다.

바람의 속도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유배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제주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떤 땅이 아니라 아무 땅도 아닌 것이었다.

고립이 필요했고, 고립은 어디서든 가능하다.

북청에서도 그는 썼다.
과천에서도 썼다.

땅이 바뀌어도 글씨는 같은 방향으로 갔다.

여기서 세 가지가 따라온다.

첫째, 선이 매체를 건너간다.

돌의 속도를 종이로 옮기는 일은 번역이다.

칼과 붓은 다른 도구다.
돌과 종이는 다른 바탕이다.

그런데 그는 앞의 힘을 뒤의 재료로 다시 만들었다.

이때 선은 그 땅에서 오지 않는다.
다른 시대의 다른 재료에서 온다.

시간을 건너온 선이다.

둘째, 여백이 장소가 아니다.

「세한도」의 여백은 넓다.
화면의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그 여백은 제주의 여백이 아니다.

바다가 아니고 들이 아니다.
종이다.

문인화의 여백은 사물이 없는 자리이지 무엇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 구분은 3부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지금은 이것만 적어 둔다.

같은 넓이의 빈 자리가 어떤 화면에서는 장소이고 어떤 화면에서는 종이다.

셋째, 풍토의 부재가 조건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은 풍토가 형식을 낳는다고 말한다.

추사는 그 반대의 경우다.
풍토를 차단한 자리에서 형식이 나왔다.

가시울타리 안에서 그는 섬을 보지 않았다.
책과 종이와 옛 글자를 보았다.

밖이 막히면 안이 깊어진다.

이것도 하나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이 책의 명제를 부수지 않는다.
명제의 범위를 알려 준다.

풍토는 형식을 낳는다.
다만 모든 형식이 풍토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넷

변시지의 화면 앞에 서 보자.

이 대면은 특별하다.

같은 섬이기 때문이다.

앞의 부에서 우리는 먼 땅들을 견주었다.
멕시코와 제주, 뉴멕시코와 제주.

여기서는 같은 땅이다.

추사는 제주에서 여덟 해를 보냈다.
변시지는 제주에서 서른여덟 해를 보냈다.

같은 바람을 맞았고 같은 바다를 보았다.

그런데 결과가 정반대다.

한쪽 화면에는 섬이 없고 다른 쪽 화면에는 섬밖에 없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첫째, 간 이유가 다르다.

추사는 보내진 것이다.
변시지는 간 것이다.

보내진 사람에게 그 땅은 벌이다.
벌은 견디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견디는 사람은 눈을 감는다.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간 사람에게 그 땅은 목적이다.
목적은 오래 본다.

둘째, 돌아갈 곳이 있었는지가 다르다.

추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서울이 있고 학문의 자리가 있었다.

그는 제주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변시지에게 제주는 돌아온 곳이었다.
다섯 살에 떠났고 마흔아홉에 돌아왔다.

더 갈 곳이 없었다.

통과하는 사람과 도착한 사람은 같은 땅을 다르게 본다.

여기서 유배라는 말을 다시 보아야 한다.

이 책의 뿌리 문장은 이렇다.

삶은 유배요, 예술은 축복이다.

추사의 유배는 제도가 내린 것이다.
문서가 있고 기간이 있고 사면이 있다.

변시지의 유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이 원래 그렇다는 인식이다.
사면이 없다.

제도의 유배는 끝난다.
삶의 유배는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것을 견디려면 그 자리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은 섬을 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은 섬을 보았다.

선도 다르다.

추사의 선은 멈춘다.

한 획이 끝나면 완결된다.
다음 획이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다.

획과 획 사이에 빈 자리가 있고 그 자리가 정확하다.

변시지의 선은 떨린다.

곧게 가다가 흔들린다.
끝이 흐려지기도 한다.

돌을 파는 선과 바람 속에서 긋는 선이 그렇게 다르다.

여백도 다르다.

두 화면 다 여백이 넓다.
그 점은 닮았다.

그러나 「세한도」의 빈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변시지의 빈 자리에는 바람이 있다.
그려지지 않았지만 있다.

한쪽의 여백은 비었고 다른 쪽의 여백은 차 있다.

이제 위계를 두지 않고 말해야 한다.

추사가 섬을 보지 않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는 다른 것을 보았고 그 다른 것에서 최고에 이르렀다.
그의 글씨는 지금도 넘어서기 어렵다.

정신이 땅을 넘어설 수 있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이 증언이 있어야 이 책이 겸손해진다.

풍토가 모든 것을 낳는다고 말하면 사람은 땅의 결과물이 된다.
그러면 예술은 필요하지 않다.

추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같은 섬에서 한 사람은 섬을 그리고 한 사람은 섬을 그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옳았다.

다섯

가시울타리 안에 사람이 앉아 있다.

밖에는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다.
그는 그것을 그리지 않는다.

종이를 펴고 먹을 간다.
붓이 마른 채로 지나간다.

집 하나와 나무 몇 그루가 생긴다.

나머지는 비워 둔다.

그 비운 자리에 섬은 들어오지 않는다.

여덟 해가 지나고 그는 섬을 떠났다.
떠난 뒤에 그 그림만 남았다.

백몇십 년이 지나 같은 섬에 한 사람이 돌아왔다.

그는 바다를 그렸다.
바람을 그렸다.

같은 땅에서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것을 보았다.

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