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풍토는 형식을 낳는다/제2부 · 선

화가와 풍토 · 제6장 · 9 / 24

에밀리 카, 위로 솟는 붓

제2부 · 선

하나

세로로 긴 화면이다.

숲이다.

나무가 곧게 서 있다.
아주 높다.

화면 위쪽까지 올라가고 거기서 끊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 굵기가 아래위로 거의 같다.
아래가 굵고 위가 가느다란 나무가 아니다.

기둥 같다.

색은 초록이다.
그런데 밝은 초록이 아니다.

푸른 기가 도는 초록, 검은 기가 도는 초록.
젖은 초록이다.

아래쪽은 어둡다.
거의 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위쪽은 밝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조각으로 보인다.

그 조각들이 이어져 있지 않다.
따로따로다.

붓질을 보자.

위아래로 훑었다.
좌우로 그은 자리가 거의 없다.

한 번 훑고 다음을 훑었다.
같은 방향이 반복된다.

물감이 얇다.

앞의 두 장과 다르다.
쌓은 물감이 아니다.

흘러내린 자리도 있다.
묽게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빠르게 마르는 물감이다.

하늘도 흐른다.

나무의 리듬이 하늘로 이어진다.
하늘이 소용돌이친다.

배경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둘

에밀리 카는 1871년에 캐나다 서해안에서 태어났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빅토리아다.
섬에 있는 도시다.

영국에서 온 집안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
언니들 손에 자랐다.

그림을 배우러 멀리 갔다.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갔고 그다음 런던에 갔다.
몇 해 있었다.

나중에는 파리에도 갔다.

그곳에서 새로운 그림을 보았다.
색을 세게 쓰는 법을 배웠다.

돌아왔다.

그리고 배를 타고 북쪽 해안을 다녔다.

원주민 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마을 앞에 나무 기둥들이 서 있었다.
사람과 짐승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을 그렸다.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마을을 다녔다.

그 기둥들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록하려 했다.

여기서 조심할 자리가 있다.

그 기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고, 그들에게는 그림보다 무거운 뜻이 있었다.

그가 기록하려 한 마음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풍토였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 자리는 지금도 논의 중이다.

이 책은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해 둔다.

같은 땅에 살면서 남의 형식을 그리는 일이 있다.

그다음에 그는 오래 그림을 놓았다.

십오 년 가까이다.

하숙집을 운영했다.
방을 치우고 세를 받고 개를 길렀다.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쉰이 넘도록 그렇게 지냈다.

1927년에 동부의 화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캐나다의 땅을 그리려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그의 그림을 보고 알아주었다.

그때 그는 쉰여섯이었다.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십몇 년 동안 그의 대표작이 다 나왔다.

숲으로 들어갔다.

작은 캐러밴을 끌고 가서 며칠씩 지냈다.
개와 원숭이와 함께였다.

거기서 그렸다.

유화를 휘발유로 묽게 만들어 종이에 그렸다.

물감이 비쌌고 종이는 쌌다.
그리고 묽은 물감은 빨리 마른다.

야외에서 그리기에 맞았다.

만년에는 글도 썼다.
그 글로 상을 받았다.

셋

여기에 이 장의 논지가 있다.

비가 많은 숲에서는 선이 위로 간다.

브리티시컬럼비아 해안은 비가 많다.
온대우림이다.

그 숲의 나무는 아주 높고 곧다.

왜 그런가.

빛이 위에만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빽빽하면 아래로 빛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위로 가야 한다.

옆으로 뻗을 여유가 없다.

곧게 올라가는 것이 그 숲의 형태다.

서장에서 우리는 제주의 나무를 보았다.
바람 때문에 한쪽으로 눕는 나무다.

여기서는 반대다.
빛 때문에 곧게 서는 나무다.

바람이 누이고 빛이 세운다.

그러면 화면의 방향이 정해진다.

수직이다.

그리고 붓질도 수직이 된다.

여기서 세 가지가 따라온다.

첫째, 재료가 속도를 정한다.

이 부의 물음이 여기서 가장 직접적으로 대답된다.

그는 유화를 휘발유로 묽게 했다.

묽은 물감은 빨리 마른다.
빨리 마르면 오래 다룰 수 없다.

그러니 한 번에 그어야 한다.

그리고 묽은 물감은 붓이 잘 나간다.
저항이 적다.

빠르게 훑을 수 있다.

두꺼운 물감은 붓을 붙잡는다.
묽은 물감은 붓을 밀어 준다.

뒤에 볼 키퍼의 붓은 무겁고 그의 붓은 가볍다.

재료가 속도를 정하고, 속도가 형태를 정했다.

그가 이 재료를 고른 것은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재료가 그 숲과 맞았다.

가난이 우연히 옳았던 것이다.

둘째, 방향이 리듬을 만든다.

같은 방향으로 여러 번 그으면 리듬이 생긴다.

한 번은 획이고 열 번은 리듬이다.

그의 화면에서 나무는 하나씩 세어지지 않는다.
여러 그루가 한 흐름으로 묶인다.

숲은 원래 그렇게 보인다.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꺼번에 온다.

셋째, 배경이 형태를 따라간다.

하늘이 소용돌이친다.

나무의 위쪽 움직임이 하늘로 넘어간다.

이것은 관찰이 아니라 확장이다.

숲에서 하늘은 조각으로만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의 틈으로 본다.

그러면 하늘이 넓은 배경이 아니라 여러 개의 형태가 된다.

앞의 부에서 오키프의 하늘은 면이 되었다.
여기서 하늘은 조각이 된다.

마른 땅에서 하늘은 한 장이고, 숲에서 하늘은 여러 조각이다.

땅이 하늘의 모양을 정한다.

넷

변시지의 화면 앞에 서 보자.

먼저 닮은 것을 본다.

두 사람 다 늦게 다시 시작했다.

에밀리 카는 쉰여섯에 다시 붓을 들었다.
변시지는 마흔아홉에 섬으로 갔다.

둘 다 그전에 이미 화가였다.
둘 다 그전의 그림과 그 뒤의 그림이 다르다.

그리고 둘 다 대표작이 늦게 나왔다.

늦게 나온 그림에는 조급함이 없다.

남은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서둘러 봐야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닮음이 있다.

둘 다 혼자 다녔다.

에밀리 카는 캐러밴을 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변시지는 섬을 걸었다.

혼자 오래 있으면 사람의 말이 줄어든다.
그러면 사물의 말이 들린다.

세 번째 닮음이 있다.

둘 다 사라진 공동체에 닿았다.

에밀리 카는 원주민 마을의 기둥을 그렸다.
변시지의 화면에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섬은 오래전 많은 사람을 잃었다.
그 일을 4·3이라 부른다.

화백은 구술에서 그 시절을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구술사, 2004–2005, 241–243쪽)

그런데 두 사람의 자리가 다르다.

에밀리 카는 밖에서 보았다.
남의 상실을 기록했다.

변시지는 안에 있었다.
자기 공동체의 상실을 애도했다.

기록과 애도는 다르다.

기록은 남기려 한다.
애도는 갖추려 한다.

기록은 정확해야 하고 애도는 조용해야 한다.

앞의 부에서 우리는 풍토와 전기를 갈랐다.
여럿이 함께 겪은 것과 한 사람이 겪은 것.

여기서는 다른 선이 필요하다.

여럿이 겪었으나 내가 그 여럿에 속하지 않은 경우.

그럴 때 그린 그림은 무엇인가.

정직하게 말하면, 이 책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두 그림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은 볼 수 있다.

기둥을 그린 화면에는 기둥이 정면으로 서 있다.
잘 보이게 그렸다.

노인을 그린 화면에서 노인은 등을 보이거나 고개를 숙인다.
잘 보이지 않게 그렸다.

보여주는 그림과 가리는 그림.

이제 차이를 보자.

가장 큰 차이는 방향이다.

에밀리 카의 선은 위로 간다.
변시지의 선은 옆으로 눕는다.

숲의 선과 들의 선이다.

나무가 높이 자라는 땅에서는 수직이 주인이 된다.
나무가 못 자라는 땅에서는 수평이 주인이 된다.

제주에서 나무는 바람에 눕는다.

그래서 화면에서 가장 긴 선은 수평선이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 한 줄.

수직이 주인인 화면은 사람을 올려다보게 한다.
수평이 주인인 화면은 사람을 멀리 보게 한다.

올려다보면 위에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멀리 보면 저쪽에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숲은 하늘을 가리키고 섬은 수평선을 가리킨다.

하늘은 닿을 수 없고 수평선도 닿을 수 없다.

두 그림 다 닿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가리키는 방향만 다르다.

하늘도 다르다.

에밀리 카의 하늘은 소용돌이친다.
움직인다.

변시지의 하늘은 비어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숲에서는 나무가 흔들리니 하늘도 흔들려 보인다.
빈 들에서는 흔들릴 것이 없으니 하늘이 가만히 있다.

바람이 더 센 쪽의 하늘이 더 조용한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렇다.

바람이 세면 흔들릴 것들이 이미 다 누워 있다.

다섯

숲에서 위를 본다.

나무가 올라가고 하늘이 조각으로 보인다.
조각들이 움직인다.

목이 아프다.

먼 섬에서는 앞을 본다.

수평선이 있고 그 위에 아무것도 없다.
조각배 하나가 떠 있다.

목이 아프지 않다.

한쪽은 올려다보고 다른 쪽은 마주 본다.

두 사람 다 오래 서 있었다.

붓은 한쪽에서 위로 갔고 다른 쪽에서 옆으로 갔다.

땅이 방향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