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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 1926–2026/100주년 기념판 · Monologue/그림의 독백

3부 · Part Three · 100주년 기념판

그림의 독백

완성된 채로만 존재하기 시작한 것들의 말

글 변정훈

100주년 기념판의 독백은 본편 『독백』과 다른 텍스트입니다. 본편 『독백』(3편) 보기 →

독백 서문

나는 그림이다. 바람은 나보다 먼저 있었고, 화가는 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오직 완성된 채로 시작했다. 붓이 떠난 뒤의 일만 나는 안다. 조명, 침묵, 낯선 눈들, 그리고 가끔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바람은 아직 나를 알아본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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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잠든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는 붓을 내려놓았고 자리를 떠났고 아마 잠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혼자 굳었다. 물감이 마르는 것을 완성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가 없는 곳에서 태어난 셈이다. 그는 아침에 돌아와 나를 오래 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은 처음 보이는 순간부터 이미 타인이다. 화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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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의 웅크린 자세를 기억한다. 그는 그것을 보고 그렸고 나는 그것이 되었다. 웅크린 사람은 화면 안에서 어딘가를 향해 있다.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방향이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고독은 쓰러진 것이 아니다. 아직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자세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벽에 걸린 채로. 아무도 없는 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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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 안의 검은 것을 까마귀라고 부른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검음은 먹에서 왔고 먹은 밤에서 왔고 밤은 이 섬의 현무암에서 왔다. 까마귀는 그 긴 계보의 마지막 형태일 뿐이다. 나는 검은 것을 두려움으로 칠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래 본 뒤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색이다. 튀기 위한 검음이 아니라 끝까지 남기 위한 검음.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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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1948년이라는 숫자를 나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의 검은 바다는 그 숫자를 알고 있다. 화가는 나를 그릴 때 아무 설명도 남기지 않았다. 그것이 옳았다. 말해지면 너무 빨리 이해된다. 이해된 것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나는 아파야 한다. 보는 사람도 같이 아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거부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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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난 곳을 기억하지 못한다. 서귀포의 아틀리에, 그 냄새와 빛과 먼지는 내가 완성되던 순간 이미 사라졌다. 나는 이후에 여러 벽을 알았다. 서울의 벽, 도쿄의 벽, 그리고 바다 건너 이름 모를 도시의 흰 벽. 벽들은 저마다 달랐다. 조명의 온도가 달랐고 사람들의 눈이 달랐고 침묵의 무게가 달랐다. 나는 어디서도 낯설지 않으려 했다. 황토는 어디서든 황토고 먹은 어디서든 먹이니까. 그러나 가끔은 안다.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올 때.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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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색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황토색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색표에 없는 것이다. 나는 냄새다. 비 온 뒤 제주의 흙냄새, 오름을 오르다 손에 묻는 그것. 나는 온도다. 한낮의 돌담이 품고 있는 오래된 햇볕의 기억. 화가는 나를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도쿄에도 서울에도 나는 없었다. 이 섬의 땅을 손에 쥐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를 찾았다. 나는 그때부터 그의 그림 안에 살기 시작했다. 냄새로, 온도로, 오래된 시간의 질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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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나는 말라가지 않는다. 수장고는 조용하다. 조명도 없고 눈도 없고 발소리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둠이 나를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황토는 어둠 속에서도 황토이고 먹은 어둠 속에서도 먹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존재한다. 어쩌면 그곳이 내가 가장 솔직한 곳인지 모른다. 보여주기 위해 긴장할 필요가 없으니까. 수장고에서 나는 그냥 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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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이 내 위를 지나갈 때 나는 움직인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고정되어 있고 너는 지나쳐 가는데 움직이는 것은 나다. 어떤 눈은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그 눈에게 아무것도 건네지 않는다. 어떤 눈은 오래 머문다. 그 눈 앞에서 나는 조금씩 열린다. 화가도 바람도 이것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완성되는 것은 붓이 떠난 날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이 오래 머무는 날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 완성 중이다. 너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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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직 말 중인 것이다. 그는 나를 내려놓았다. 포기가 아니라 여기까지가 내 몫이라는 듯이. 붓은 멈췄지만 물감은 멈추지 않았다. 물감이 굳은 뒤에도 그 긴장은 남아 있다. 완성된 그림들은 말을 마친 것들이다. 나는 아직 문장의 중간에 있다. 그것이 나를 다른 그림들보다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드는지 모른다. 끝나지 않은 것들은 계속 무언가를 향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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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보다 오래 살 것이다. 그것이 내 짐이다. 그는 떠났고 바람은 계속 불고 나는 벽에 걸려 있다. 백 년이 지나도 황토는 황토이고 먹은 먹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보는 눈들은 바뀔 것이다. 내가 걸린 벽도 바뀔 것이다. 내 앞에서 멈추는 이유도 바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인지 모른다. 다만 나는 황토와 먹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은 백 년이 지나도 바꾸지 않겠다. 그것이 그가 내게 남긴 한 가지였으니.

책끝에

『그림의 독백』은 화가도 바람도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을 그림 자신이 말하는 텍스트다. 바람은 먼저 알고 있었다. 화가는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그림은 — 지금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