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7 · PART III · 떠난 뒤에 남는 것들
바람이 쓰는 편지
〈열중〉 · 1995
글 변정훈
몸을 낮춘
사람 하나.
앞에는
네모난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나무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수평선 가까이
배가 보였다.
나는
그 종이를 보았다.
저것이
편지라면
첫 줄에는
누구의 이름이 있을까.
한 자 쓰고
멈췄을까.
또
한 자.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은
가까이 있었다.
바람이 왔다.
종이의
한쪽 끝이 들렸다.
사람이
손을 얹을까 했다가
그대로 두었다.
무엇이 쓰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한 번 더 지나갔다.
이번에는
다른 끝이 조금 들렸다.
나는
글씨를 읽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종이의 가장자리만
바람이 올 때마다
가볍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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