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 형태를 부순 사람들 · No. 13 / 50
세잔 — 〈사과가 있는 정물〉
Paul Cézanne — Still Life with Apples
1890년대. 캔버스에 유채. 여러 점의 사과 정물 연작 중 한 점.
“큰 형태를 잡는다는 것은 세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사물의 생명감을 붙드는 일이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탁자 위에 사과가 놓여 있다. 둥글지만 완전한 원은 아니다. 접시는 기울고, 천은 접히며, 탁자의 모서리는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세잔은 사과를 한눈에 본 것처럼 그리지 않았다. 여러 번 보고, 시선을 조금씩 옮기고, 그 시간들을 한 화면 안에 겹쳤다. 그래서 원근은 흔들리지만 사물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붓질 하나가 하나의 면을 만든다. 면들이 쌓여 사과가 되고, 사과가 쌓여 화면이 선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짓는 일에 가깝다. 그의 정물은 입체주의가 올 수 있는 자리를 미리 열었다.
변시지의 선도 윤곽을 베끼지 않는다. 바다를 두르기보다 바람의 방향을 세우고, 사람의 외형보다 버티는 자세를 남긴다. 세잔의 붓질이 대상을 쌓아 올리듯, 변시지의 선은 견디는 힘을 세운다.
둘 다 재현을 줄인 뒤 회화의 본체에 가까이 갔다. 세잔은 사과 하나로, 변시지는 섬 하나로 그 자리에 이르렀다.
사과는 썩는다. 그러나 화면 위의 사과는 아직 탁자에 있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