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Ⅱ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Ⅱ —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 No. 12 / 50

베이컨 —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 초상을 위한 습작〉

Francis Bacon —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 캔버스에 유채, 153 × 118 cm. 디모인 아트센터.

교황이 앉아 있다. 보랏빛 의자와 검은 공간 사이. 입은 벌어졌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베이컨은 벨라스케스의 위엄 있는 초상을 해체했다. 권력의 표면을 벗기자, 안에서 공포가 나왔다. 인물은 투명한 우리에 갇힌 듯 보이고, 세로로 흐르는 붓질은 화면 전체를 감옥의 창살처럼 가른다.

그가 그린 것은 한 사람의 비명이 아니라 권력 안에 갇힌 인간의 취약함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자기 몸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변시지의 인물은 소리 지르지 않는다. 몸은 바람에 기울지만 화면 안에 남는다. 베이컨의 인물은 내부에서 찢어지고, 변시지의 노인은 외부의 힘에 밀리면서도 형태를 간신히 지킨다.

한쪽은 존재가 무너지는 순간이고, 한쪽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순간이다. 두 화면 모두 인간의 존엄을 아름다운 얼굴에서 찾지 않는다. 견디는 몸, 혹은 견디지 못하는 몸에서 찾는다.

입은 아직 열려 있다. 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