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Ⅱ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Ⅱ —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 No. 11 / 50

키르히너 — 〈베를린 거리〉

Ernst Ludwig Kirchner — Berlin Street Scene

1913. 캔버스에 유채. 베를린 거리 연작 중 한 점.

키르히너 — 〈베를린 거리〉 — Kirchner — Berlin Street Scene (1913)
Ernst Ludwig Kirchner, Berlin Street Scene, 1913.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재현이란 자연을 단순히 옮기는 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과 관계한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베를린의 번화가다. 사람이 많다. 얼굴은 연둣빛으로 굳고, 그림자는 보랏빛으로 일그러진다. 건물도 사람도 모두 기울어 있다.

키르히너의 인물들은 걷고 있지만, 걷는다는 느낌보다 밀려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같은 옷, 같은 각도, 같은 속도. 근대 도시의 군중은 사람을 늘리면서도 각자의 얼굴을 지운다.

색은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얼굴은 연두색이 아니고 거리는 보라색이 아니다. 그는 보이는 색보다 내부에서 나는 불협화음을 그렸다. 인상주의가 빛의 조화를 찾았다면, 표현주의는 그 조화가 깨지는 순간을 붙잡았다.

변시지의 화면에는 군중이 거의 없다. 키르히너의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이름을 잃고, 변시지의 사람은 너무 적어서 하나의 존재로 남는다. 도시의 속도가 사람을 삼키는 자리와 섬의 바람이 사람을 드러내는 자리다.

군중 속의 고독과 빈 들의 고독은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사람이 자기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긴장이다.

사람들은 아직 걷고 있다.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는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