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 형태를 부순 사람들 · No. 14 / 50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Pablo Picasso —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캔버스에 유채, 243.9 × 233.7 cm. 뉴욕 현대미술관.
“입체파의 형태는 자연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사물을 새롭게 조직하는 조형의 질서이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다섯 여인이 정면을 본다. 몸은 각지고, 얼굴은 앞과 옆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오른쪽 두 얼굴은 가면처럼 날카롭다.
피카소는 르네상스 이후 서구 회화를 지탱해 온 단일 시점과 자연스러운 공간을 무너뜨렸다.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가면에서 만난 낯선 힘은 그에게 새로운 문법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단순한 영감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이 ‘원시’라 낮춰 부르던 비서구 형식이 서구 현대미술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는 역설이 있다. 오늘 우리는 그 영향과 함께 식민주의적 시선과 문화적 전유의 문제도 함께 보아야 한다.
변시지는 외부의 형식을 충격적으로 해체하지 않았다. 그는 오래 그리면서 차츰 덜어냈다. 형체를 부수기보다 바람과 시간에 닳게 했다. 피카소의 해체는 칼날 같고, 변시지의 소거는 풍화에 가깝다.
서로 다른 방법이지만, 둘 다 눈에 익은 세계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회화는 보이는 것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보이는 방식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다섯 얼굴은 아직 우리를 정면으로 본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