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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Ⅱ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Ⅱ — 어둠으로 들어간 사람들 · No. 09 / 50

고야 — 〈검은 그림들〉

Francisco de Goya — The Black Paintings

1819–1823. 회벽에 유채로 그려진 뒤 캔버스로 이전, 14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 — 〈검은 그림들〉 — Goya — The Black Paintings (1819–1823)
Francisco de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19–23. Museo del Prado.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귀가 들리지 않았고, 일흔이 넘었으며, 전쟁과 권력의 변화를 오래 보았다. 고야는 마드리드 외곽의 집 벽에 그림을 그렸다. 주문받지 않았고, 전시하려 하지도 않았다.

팔지 않을 그림을 그릴 때 화가에게 무엇이 남는가. 〈사투르누스〉에서는 신이 자기 자식을 삼킨다. 신의 위엄은 사라지고 짐승의 공포만 남는다. 시간의 신화이면서, 나라가 백성을 먹는 장면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가장 조용한 그림은 〈개〉다. 화면 대부분이 비어 있고, 아래쪽에 개의 머리 하나만 보인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빈 공간은 변시지의 여백과 닮아 보이지만 성질이 다르다. 변시지의 여백에는 돌아오지 않는 배와 기다리는 사람, 지나간 바람의 흔적이 있다. 고야의 빈자리에는 응답 자체가 없다. 한쪽의 비어 있음은 그리움이고, 다른 한쪽은 침묵하는 세계다.

고야는 아름답게 그리려는 마음을 버렸다. 붓질은 거칠고 색은 검다. 그런데도 화면은 강하다. 정직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시대의 상처를 고칠 수 없을 때라도 기록할 수 있다.

개는 아직 위를 보고 있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