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빛을 붙든 사람들 · No. 06 / 50
터너 — 〈비, 증기, 속도〉
J. M. W. Turner — Rain, Steam and Speed
1844. 캔버스에 유채, 91 × 121.8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폭우다. 빗속을 기차가 철교 위로 정면에서 달려온다. 형태는 거의 사라지고, 비와 증기와 빛이 한 덩어리로 소용돌이친다. 그 한가운데를 검은 기관차가 뚫고 나온다.
1844년의 기차는 아직 새로운 짐승이었다. 터너는 폭풍을 그리던 손으로 기계를 그렸다. 자연의 힘과 산업혁명의 힘이 한 화면에서 부딪친다. 속도가 풍경을 삼키는 순간이다.
터너의 소용돌이는 비와 증기의 것이다. 빨라지는 세계의 어지러움이 그 안에 있다. 변시지의 소용돌이는 제주 바람의 것이다. 하나는 시대가 바뀌는 소리이고, 하나는 시대보다 오래된 소리다. 터너는 다가오는 것을 그렸고, 변시지는 떠나지 않는 것을 그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선다. 인간이 멈출 수 없는 힘 앞에 놓이는 자리다. 터너의 화면에는 기차 앞을 달리는 작은 산토끼가 있다고 전해진다. 변시지의 화면에는 바람 앞에 선 조랑말이 있다. 달아나는 것과 버티는 것. 둘 다 살아 있는 존재의 대답이다.
기차는 어디엔가 도착했을 것이고 폭우도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비는 내리고, 기차는 오고 있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