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Ⅰ 빛을 붙든 사람들

Ⅰ — 빛을 붙든 사람들 · No. 05 / 50

쇠라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Georges Seurat —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1886. 캔버스에 유채, 207.5 × 308.1 cm. 시카고 미술관.

쇠라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Seurat —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1886)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86. Art Institute of Chicago.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미적 감각 또는 감각적 미야말로 사물과 예술을 잇는 기본적 정서이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강 가운데 섬. 일요일 오후의 잔디밭. 사람들은 서고, 앉고, 걷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면 인물은 사라지고 점만 남는다.

쇠라는 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았다. 순색의 작은 점들을 나란히 놓고, 혼합은 보는 사람의 눈에 맡겼다. 셰브뢸의 색채 대비 이론과 당대의 광학 연구는 그의 실험을 뒷받침했다. 과학적 계산으로 만든 그림인데도 차갑기만 하지 않은 이유는, 점들이 일요일 오후의 느린 호흡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은 조각처럼 멈춰 있다. 그러나 이 정지는 죽은 것이 아니다. 쉬기 위해 멈춘 시간이다. 변시지의 노인도 멈춰 있지만, 그 정지는 다르다. 쇠라의 사람들은 쉬느라 멈췄고, 변시지의 노인은 견디느라 멈췄다. 쉼의 정지는 부드럽고, 견딤의 정지는 팽팽하다.

점 하나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점이 모여 잔디와 그늘, 강물의 반짝임과 한 시대의 일요일을 만든다. 변시지의 짧은 검은 붓질도 하나만으로는 바람이 아니다. 그것이 수없이 겹칠 때 비로소 바람이 분다.

작고 성실한 것들이 모여 큰 시간을 세운다. 하루하루가 한 생애를 만들듯이.

점들은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