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Ⅰ 빛을 붙든 사람들

Ⅰ — 빛을 붙든 사람들 · No. 03 / 50

모네 — 〈인상, 해돋이〉

Claude Monet — Impression, Sunrise

1872. 캔버스에 유채, 48 × 63 cm.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모네 — 〈인상, 해돋이〉 — Monet — Impression, Sunrise (1872)
Claude Monet,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Musée Marmottan Monet.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빛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면서 동시에 사물의 형태를 명확히 해 주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새벽의 항구다. 안개가 있고, 물이 있고, 그 위에 주황색 해 하나가 떠 있다. 배는 윤곽만 남아, 있다가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밤은 끝났지만 낮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모네는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되어 가는 세계를 그렸다. 이름 붙기 전의 색, 굳기 전의 형태다. 빠른 붓질과 겹쳐진 물감은 순간의 떨림을 붙잡는다. 색은 팔레트에서 완전히 섞이지 않고 화면 위에서 서로 스민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흐려진다.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부터가 안개인지 알기 어렵다. 경계가 사라질 때, 보는 사람과 풍경의 구분도 잠시 흐려진다. 동양의 필묵에서 번짐은 실수가 아니라 재료가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하는 시간이다. 모네 역시 유화 안에서 그 시간을 열었다.

변시지의 화면에서도 수평선은 자주 사라진다. 하늘과 바다가 한 장의 마른 풀잎색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 배 한 척만 남는다. 모네의 지워짐은 안개의 일이고, 변시지의 지워짐은 바람의 일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라질 순간을 정직하게 붙든 그림은 오래간다. 완성보다 흐름을, 고정보다 생성의 시간을 믿었기 때문이다.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