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9 · PART IV · 하나씩 덜어내고 남은 것
조금 웃음이 났다
〈어느 흥겨운 바닷가의 한나절〉 · 1979
글 변정훈
바닷가.
사람은
없었다.
나무 하나.
그 곁에
까마귀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파도가 돌에 부딪혔다.
붓끝이
캔버스를 긁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가지 위에서
몸을 조금 옮겼다.
발톱이
나무를 고쳐 잡았다.
나는
붓을 든 채
귀를 기울였다.
파도가 오면
내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물러가면
다시 내려왔다.
까마귀가
날개를 한 번 폈다.
날아갈 줄 알았는데
다시 가지에 앉았다.
그렇게
한나절이 갔다.
물감을 정리하다가
제목을 적었다.
〈어느 흥겨운 바닷가의 한나절〉.
적어놓고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조금
웃음이 났다.
그때
가지 하나가
다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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