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15 · PART II ·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
내일도 올 사람이니까
독립 STORY
글 변정훈
창덕궁 비원에
이젤을 두고 다녔다.
캔버스도
맡겨두었다.
물감 상자만
손에 들고 오갔다.
하루가 저물면
그림을
부용정 창틀에 올려두었다.
젖은 물감이 닿지 않게.
미끄러지지 않게.
아래에서
한 번 더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림이었다.
“두고 가시오?”
“예.”
나는
물감 상자를 들었다.
“내일 또 올 테니까.”
다음 날이면
같은 길을 걸어
다시 그림 앞에 섰다.
어제 좋았던 곳이
아침에는 달라 보였다.
한 곳을 고치면
또 한 곳이 보였다.
저녁이 오면
다시 창틀에 올려두었다.
어느 날
그림을 다 그렸다.
창틀에서 내려
들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또
물감 상자를 들고
부용정 앞에 섰다.
창틀부터
올려다보았다.
그림이 있던 곳에
빛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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