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08 · PART I · 끝이 가까워지니 보이는 것들
이대로는 안 되나요
〈네모의 상〉 · 1951
글 변정훈
오래전에 그린
여인 앞에
다시 섰다.
여인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옷은 단정했고
고개는 조금 숙여져 있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얼굴부터 그렸다.
눈. 코. 입.
“고개를
들어주시겠소.”
여인이
나를 보았다.
잠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나요?”
나는 얼굴에서 어깨로
눈을 내렸다.
팔.
두 손.
한 손이
다른 손을 덮고 있었다.
“그렇게 계시오.”
여인은
다시 눈을 내렸다.
나는
그 자세로 그렸다.
이제는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목만
남아 있었다.
네모.
라틴어로
이름 없는 사람.
그림 속 여인은
내가 이름을 찾는 동안에도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한 손이
다른 손을
가만히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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