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Ⅶ 오늘의 사람들

Ⅶ — 오늘의 사람들 · No. 45 / 50

키퍼 — 〈대지〉

Anselm Kiefer — The Land

1970년대 이후의 대지·역사 회화 연작. 유채, 짚, 재, 흙 등 혼합재료.

“풍토는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정신을 형성하는 조건이다.” — 변시지 미학의 핵심 개념

검게 탄 들판이 화면 깊숙이 이어진다. 흙과 짚, 재와 납이 그림의 표면을 무겁게 만든다.

키퍼에게 땅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전쟁과 파괴, 죄와 기억이 묻힌 역사적 물질이다. 화면의 갈라짐과 거친 표면은 과거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는 독일의 신화와 역사, 폐허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억하기 어려운 것을 피하지 않고, 재료 자체가 상처를 지니게 했다. 그림은 이미지를 넘어 무게와 냄새를 가진 사물이 된다.

변시지의 제주 땅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바람과 돌, 역사와 고독이 사람의 자세를 만든다. 그러나 키퍼의 땅이 죄책감과 폐허를 파헤친다면, 변시지의 땅은 상처를 말없이 견디는 삶의 자리다.

두 화가에게 땅은 발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들어온 기억이다.

재 속에서도 들판은 끝나지 않는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