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Ⅵ 환상을 본 사람들

Ⅵ — 환상을 본 사람들 · No. 38 / 50

데 키리코 — 〈거리의 수수께끼와 멜랑콜리〉

Giorgio de Chirico — 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 캔버스에 유채, 87 × 71.5 cm. 개인 소장.

긴 회랑과 빈 광장, 작은 소녀와 굴렁쇠가 있다. 화면 밖에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낮인데도 불안하다. 햇빛은 밝지만 공간은 비어 있고, 원근은 깊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데 키리코는 익숙한 도시를 낯선 꿈으로 바꾸었다.

그림자는 무엇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화면 밖에 있다는 사실만 느껴진다.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것 같은 시간이 화면 전체를 붙든다.

변시지의 빈 들판에도 보이지 않는 사건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배, 지나간 사람, 곧 불어올 바람. 그러나 데 키리코의 빈 공간은 도시의 불안이고, 변시지의 여백은 기다림과 기억의 자리다.

둘 다 없는 것을 그린다. 한 사람은 부재를 위협으로 만들고, 한 사람은 부재를 견딤으로 바꾼다.

소녀는 아직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