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Ⅵ 환상을 본 사람들

Ⅵ — 환상을 본 사람들 · No. 37 / 50

로스코 — 〈붉은색 위의 검정〉

Mark Rothko — Black on Maroon

1958. 캔버스에 유채·아크릴·아교 혼합재료, 266.7 × 381 cm. 런던 테이트.

“작품은 이해하기 이전에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내용을 의식하기 전에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넓은 붉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이 떠 있다. 가장자리는 단단하지 않고, 색은 서로 스며든다.

로스코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묻는 순간 멀어진다. 형상보다 색의 깊이와 간격, 보는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다. 가까이 서면 화면은 시야를 덮고, 색은 벽이 아니라 공간이 된다.

검정은 완전한 검정이 아니고 붉음도 하나의 붉음이 아니다. 얇은 층들이 겹쳐 안에서 빛이 올라온다. 어둠은 빛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빛이 남아 있는 정도를 드러낸다.

변시지의 마른 풀잎색도 단순한 배경색이 아니다. 오래 바래고 마른 시간의 층이며, 그 위의 검은 선은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는 표식이다.

로스코는 색면 안에 침묵을 넓혔고, 변시지는 여백 안에 바람을 남겼다. 한쪽은 색으로 깊어지고, 한쪽은 비움으로 깊어진다.

검은 사각형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