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연구·비평/명화, 다시 읽기/Ⅲ 형태를 부순 사람들

Ⅲ — 형태를 부순 사람들 · No. 18 / 50

마그리트 — 〈이미지의 배반〉

René Magritte — The Treachery of Images

1929. 캔버스에 유채, 60.3 × 81.1 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그것을 복사하지는 않는다.” — 변시지, 『예술과 풍토』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림 속 파이프에는 담배를 넣을 수 없다. 입에 물 수도 없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의 이미지다. 마그리트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차이를 한 문장으로 드러냈다.

회화는 사물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름도 사물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언어와 실제 대상 사이에는 늘 틈이 있다. 그 틈을 숨기면 그림은 현실인 척하고, 드러내면 생각의 장치가 된다.

변시지의 말과 배와 노인도 실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간 바람과 기다림의 감각은 실제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재현은 사물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사물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마그리트는 그림을 의심하게 했고, 변시지는 그림 너머의 부재를 느끼게 했다. 둘 다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파이프를 본다.

본문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발언은 화백의 말로 적지 않았다.